한국인은 모르는 미국 스타트업들의 일하는 방식: YC 창업자 3인이 말하는 성장과 지속가능성
이 글은 EO Korea 채널의 북 팟캐스트 ‘이오서재’에서 2026년 8월 4일 공개된 특별편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진행은 아웃썸의 피터신 대표가 맡았고, 미미박스의 하형석 대표와 어사이드의 이상훈 공동창업자 겸 CTO가 함께했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시기에 Y 콤비네이터(YC)를 거쳤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형석 대표는 2014년 겨울 배치로 한국인 최초로 YC에 합류한 1세대 파운더이고, 피터신 대표는 2020년 겨울 배치 퀄리파이 출신이며,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2025년 여름 배치로 가장 최근에 YC를 경험했다. 대담은 필름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의 책, 즉 조직문화 전문가 브리 그루프의 ‘오늘 일 재밌었어’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을 매개로 진행되었으며,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과 팀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는지를 중심 주제로 다루었다.
YC의 문턱을 넘기까지
세 사람의 YC 합류 과정은 저마다 달랐다. 하형석 대표는 800만 원으로 미미박스를 창업해 2년 차에 매출 40억 원을 만들었지만, 그중 순이익은 3천만 원에 불과했다. 외부 투자 없이 버티다가 국내 벤처캐피털들로부터 여러 차례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뷰티 스타트업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YC 지원이 통과된 것은 케빈 헤일이라는 파트너와의 인연 덕분이었는데, 이 파트너가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합류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YC 합류 후 6개월 만에 시리즈A로 12억 원을 투자받으면서, 통장에 남아 있던 3천만 원이 다시 성장의 발판이 되는 자금으로 전환되었다.
이상훈 공동창업자의 이야기는 훨씬 긴 여정이었다. 그는 YC에 일곱 번 지원한 끝에 합류에 성공했다. 초반 실패들은 제품의 완성도나 유저 기반이 부족했던 탓으로 받아들였지만, 탈락이 반복되면서 점차 내적인 집착으로 바뀌어갔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여섯 번째 도전이었던 AI 미팅 노트테이커 ‘캐러스’ 지원 당시에는 면접까지 올라갔음에도, 유저의 95퍼센트가 한국인이라는 점과 미국 내 네트워크 부재를 이유로 탈락했다는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일곱 번째 지원인 어사이드에서는 한국적인 색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철저히 미국 시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접근을 바꾸었고, 그 결과 합류에 성공했다.
피터신 대표는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퀄리파이 트랙을 통해 한 번의 지원으로 YC에 합류했다. 당시 한국에서 투자 라운드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카카오 출신 개발자인 공동창업자와 글로벌 사업개발을 담당하던 자신의 팀 구성, 그리고 니치한 아이템이 차별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 사람 모두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팀이나 아이템이 오히려 YC에서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을 짚었다.
하형석 대표는 YC 면접 당시의 일화도 전했다. 폴 그레이엄, 샘 알트만, 지메일을 만든 폴 북하이트, MIT 교수 등이 배석한 면접장에서 받은 첫 질문은 “아마존과 어떻게 경쟁할 것이냐”는 것이었는데, 미리 준비했던 예상 질문지에는 없던 내용이라 다소 횡설수설했음에도 합류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면접 당일 저녁,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폴 그레이엄이었고 투자금액과 지분율을 곧바로 통보받았다는 일화도 인상적이다. YC 합류 후에는 미국용 웹사이트조차 없는 상태에서, 담당 파트너였던 폴 북하이트가 CTO에게 “3일 안에 만들어”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3일 만에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YC 특유의 속도감을 전했다.
오피스 아워, 성장률 하나로 조직을 정렬시키는 방식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YC의 ‘오피스 아워’ 문화였다. 담당 파트너와 매주 만나 오직 지난주 대비 성장률 몇 퍼센트를 달성했는지만 묻는 방식으로, 이유나 맥락 설명 없이 숫자로만 소통하는 이 건조함이 오히려 극도의 집중력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하형석 대표는 YC 시절 팀 전체가 주 7일 근무 체제로 전환해 토요일 오후 한나절만 쉬면서 일했던 경험을 전했다. 처음 입소했을 때 54개 배치 기업 중 인기투표에서 여덟 번째로 낮은 순위를 받았던 것이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각오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이 시기가 미미박스 역사상 가장 성장률이 높았던 구간이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오피스 아워를 경험했다. 비슷한 업종의 회사들을 묶어 원형으로 둘러앉아 돌아가며 그 주의 성장과 매출을 발표하게 하는 ‘그룹 오피스 아워’ 방식이었는데, 옆 팀들이 매주 성장 수치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아무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실질적인 동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성장 중심의 단일 프레임워크가 흐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여러 투자자가 들어오면서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YC는 성장률이라는 단 하나의 질문만 던지지만, 이후 각기 다른 투자자들이 디자인이나 다른 지표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조직의 집중력이 분산되었다는 것이다.
하형석 대표는 미미박스가 창업 10년이 넘은 지금도 YC 시절의 이 프레임워크, 즉 하나의 명확한 질문을 조직 문화로 되살리는 작업을 다시 시도했고, 그 결과 최근 들어 YC 시절과 비슷한 성장세를 회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샘 알트만과의 오피스 아워 일화도 전했다. 회사가 어려웠던 시기에 공감을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샘 알트만은 그의 설명을 그저 “체크, 체크”로 받아넘긴 뒤 “그런데 너는 왜 여기 있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잖아”라는 말로 되돌려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서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질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갖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한국, 출발점이 다른 창업 문화
세 사람은 미국과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차이를 여러 각도에서 짚었다. 하형석 대표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의 60에서 70퍼센트가 창업자 출신이거나 엑시트 경험자인 반면, 한국은 금융권 출신 비중이 높아 초기 단계와 후속 투자 단계 사이에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더 근본적인 차이로는 창업의 출발점 자체를 꼽았다. 미국 창업자들은 “내 제품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반면, 한국 창업자들은 유니콘이 되어야 한다거나 글로벌 진출을 해야 한다는 마일스톤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피치덱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한국 스타트업의 피치덱은 회사가 왜 망하지 않을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반면, 미국 피치덱은 오직 일이 잘 풀렸을 때 어떤 업사이드가 있는지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미국 자본시장의 관대함도 언급되었다. 하형석 대표는 미국에서는 투자금이 늘어난 만큼 계속 후속 투자가 이어지는 데 반해, 그 눈덩이를 더 크게 굴리는 실전 경험은 여전히 스스로에게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동시에 미국 시장은 실패하더라도 연대보증이나 개인 파산 없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어, 창업자가 상한선 없이 달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평가했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하형석 대표는 회사의 성장이 잠시 꺾였을 때 수백억 원을 투자했던 이사회 멤버가 “이건 더 이상 내 시간을 쓸 가치가 없다”며 미련 없이 이사직을 내려놓고 떠난 경험을 전했다. 창업자로서는 마음 아픈 경험이었지만, 이것이 바로 실리콘밸리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초기 매출을 만드는 현실적인 방법들
연고 없는 미국 시장에서 첫 고객을 확보하는 과정도 화두에 올랐다.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어사이드의 세일즈 과정에서 검증 단계(POC)가 지나치게 길어졌던 어려움을 전했다.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해주는 과정에서 제품이 특정 고객사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문제도 겪었다고 밝혔다. 반면 하형석 대표는 소비재 스타트업 특성상 미국 고객 한 명의 구매력이 한국 대비 수십 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신제품에 대한 유연성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자본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레딧에 직접 들어가 바이럴을 만들며 첫 유저들을 모았던 경험도 전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상훈 공동창업자가 언급한 “만들기 전에 먼저 팔아라(sell before you make)”는 YC식 멘탈리티였다. 그는 이 방식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리콘밸리 문화 자체가 이런 임기응변을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 자신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을 할 때도 강조하는 원칙이 되었다고 밝혔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능을 이미 있는 것처럼 발표하고, 이후에 실제로 구현해내는 방식이 실리콘밸리에서는 낯설지 않은 관행이라는 것이다.
허슬 문화의 명암과 ‘오늘 일 재밌었어’가 던지는 질문
대담의 후반부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책, 조직문화 전문가 브리 그루프의 ‘오늘 일 재밌었어’로 이어졌다. 이 책은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화이자 등이 선택한 조직문화 전문가가 쓴 것으로, 일이 원래 고통이라는 통념을 깨고 즐거움과 성과가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 사람은 저마다 이 제목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는데,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하루하루의 즐거움보다는 “올해 재밌었어”라는 단위로 돌아볼 때 더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하형석 대표는 200명 남짓한 조직이 수백만 명의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난 3개월 혹은 6개월 중 재미있었던 날이 며칠이나 있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고 밝혔다.
압박의 부작용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YC 시절 어사이드가 오피스 아워에서 좋은 성과를 뜻하는 초록색 지표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아붙였던 시기를 돌아보며, 오히려 그때가 팀의 생산성이 가장 저하되고 개개인의 역량이 발휘되지 못했던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좁은 공간에서 얼굴을 계속 맞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이 업무에 섞여 들어갔고, 이는 발언을 주저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하형석 대표는 대표로서 조직의 안정감을 만드는 자신만의 두 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첫째는 명확함으로, 연간 목표를 단 하나로 정하고 일 년 내내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주력 제품인 립오일의 연간 판매 목표(작년 200만 개에서 올해 1천만 개)처럼 매우 구체적인 선행지표 하나에 조직 전체를 정렬시킨다고 밝혔다. 둘째는 예측 가능함으로, 신입사원에게는 “디노와 일하는 방법”이라는 A4 서너 장 분량의 문서를 나눠준다고 한다. 이 문서에는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추구하지 않는지가 담겨 있어, 구성원들이 그의 그날그날의 감정 상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칭찬에는 서툴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성과를 인정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보상, 이른바 “금융 치료”를 언급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시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YC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가 오히려 팀에게 가장 힘든 슬럼프의 시기였다고 밝혔다. 매출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려 팀의 속도가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며 그는 YC가 강조했던 “유저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라”는 원칙을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자”로 전환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AI 브라우저 어사이드다. 스스로 만든 제품을 직접 사용하며 느끼는 불편함에서 다음에 해결할 문제가 자연스럽게 도출되었고, 유저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들어오면서 제품이 살아있다는 감각과 함께 일의 재미도 되살아났다고 전했다.
하형석 대표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자가 실제로 생기고 자신이 만든 기능을 수만 명이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점진적으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피터신 대표는 성과나 재미를 너무 먼 미래로 미루지 않고, 점심시간에 좋은 카페에 들르는 것과 같은 소소한 순간들을 자주 챙기는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과 삶의 경계, 각자가 찾은 답
세 사람은 일과 개인적인 삶을 분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한때 연인과의 관계에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져 다툼이 잦았던 경험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집 안에서는 경계를 완전히 허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 대신, 집 밖에 나갔을 때만큼은 온전히 상대방에게 집중한다는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하형석 대표는 정반대의 방식을 택했다. 스스로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사무실에 있을 때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예 그 방향으로 삶을 최적화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를 모두 잡으려고 시도했던 과거에는 오히려 휴가지에서 다투는 일이 잦았지만, 이제는 배우자와 각자 따로 휴가를 떠나는 방식으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죽음을 앞두고 후회할 일을 떠올렸을 때,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걸 하는 후회보다 회사에서 더 해볼 걸 하는 후회가 클 것 같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선택을 가족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나니, 가족들도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미미박스 초기에는 데이터와 엔지니어링 팀의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 초기 엔지니어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했던 일화도 전했다. 렌트비 없이 일상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실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고, 이는 회사에도 개인적으로도 큰 자산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으로 나가야 할까
대담은 미국 진출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으로 마무리되었다. 하형석 대표는 과거에는 반드시 미국이나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로케이션과 무관하게 어디에서든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다만 더 큰 시장에 더 빨리 나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미국을 경험해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선택지라고 덧붙였다. 이상훈 공동창업자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업을 처음 한다면 미국에서 시작해 확장하는 방식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검증받은 제품은 자연스럽게 다른 시장으로도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세 사람은 이날 대담이 YC에 지원하려는 사람, 미국 진출을 고민하는 사람, K뷰티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이들의 경험이 공유됨으로써, 다음 세대의 미미박스와 어사이드가 더 빠른 시일 안에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뜻이었다.
| 출처: EO Korea, ‘한국인은 모르는 미국 스타트업들의 일하는 방식 |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 오늘 일 재밌었어 | 이오서재’, 2026년 8월 4일 공개. 참고 도서: 브리 그루프, 『오늘 일 재밌었어』(필름출판사) /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필름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