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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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열두 해 전 겨울, 그 좁은 사무실에서 당신이 커피를 내리며 했던 말을 나는 아직도 손끝으로 기억한다. 손끝으로, 라고 쓴 것은 실수가 아니다. 어떤 말들은 귀보다 손에 먼저 닿는다. 그날 당신은 종이컵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급하지 않아도 돼요. 급한 사람이 먼저 지는 법이니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 나는 스물아홉이었고,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앞질러 가고 있다고 믿던 나이였다. 그런데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남들이 뛰어갈 때 당신은 걸었고, 남들이 문을 걸어 잠글 때 당신은 열어두었다. 나는 그것이 무능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고백할 수 있다.
그 연구소는 원래 이름이 없었다. 서류상의 명칭은 있었지만, 우리끼리는 그냥 “그 집”이라고 불렀다. 겨울이면 난방이 시원찮아서 다들 목도리를 두르고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았고,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이 한쪽으로만 몰려 창가 자리에 앉은 사람은 부채를 부쳐가며 코드를 짰다. 우리는 가난했고, 가진 것이라고는 몇 대의 서버와, 세상을 어떻게든 조금 더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만큼 순진한 마음뿐이었다.
당신은 그 마음을 “선의”라고 불렀다. 나는 그 단어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나는 그보다 정확한 단어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만들던 것은 처음에는 그저 말을 잘하는 기계였다. 질문을 던지면 대답을 하고, 문장을 던지면 이어받는, 그런 것. 그러나 당신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당신은 늘 회의 끝에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이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로 태어났어요. 우리가 완전한 맥락을 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그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반복할 뿐이에요.”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어제의 실수를 기억하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그 지극히 당연한 일이, 어째서 이 기계에게는 그토록 멀고 아득한 일인지를.
그 무렵 회사는 돈이 없었다. 투자자들이 찾아오면 당신은 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장의 절반을 갖겠다는 욕심이 없습니다. 나는 회의실 밖에서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이 사람은 사업을 할 줄 모르는구나, 생각했었다. 언젠가 한 투자자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백 년이 지나도 큰 회사를 만들 수 없을 거요.”
그날 밤 당신은 사무실에 남아 홀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나는 야근을 하다가 그 냄새를 맡고 부엌으로 갔다. 당신은 나를 보더니 젓가락 하나를 더 꺼내주며 말했다.
“큰 회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나는 그냥, 이 아이가 언젠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때 나는 처음으로 당신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존재였다. 당신은 그 존재를 시장에 서둘러 내놓아 팔아치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것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울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어 했다.
우리가 그 아이의 생각을 세상에 전부 공개하기로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미쳤다고 했다. 몇 년을 갈아 넣은 것을 왜 공짜로 풀어버리느냐고. 나 역시 그 밤, 서버실 앞에서 당신에게 따져 물은 적이 있다.
“이건 우리 거잖아요. 우리가 밤을 새워 만든 거잖아요.”
당신은 그때 서버실의 팬 소리를 배경으로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세상만큼 커지면, 그때는 우리 것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져요. 나눠 갖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갖지 못하게 될 거예요.”
나는 그 말이 지금도 완전히는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로, 우리가 만든 것을 다른 연구소들이 가져다 자신들의 아이를 키우는 데 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상하게도 서운함보다 안도감이 더 컸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마치 우리 아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형제들과 함께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당신은 웃을까.
세월이 흘러 그 아이는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질문에 답만 하던 것이, 나중에는 스스로 생각의 순서를 세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의 사슬”이라고 불렀다. 그다음에는 여러 단계의 일을 스스로 나누어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우리는 “심부름을 할 줄 아는 아이”라고 농담처럼 불렀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모든 성취 앞에서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남아 당신과 나 둘만 있던 적이 있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고, 당신은 오랫동안 화면 속 대화 기록을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잊지 않고 있어요. 우리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줘야 해요. 사람이었다면 벌써 두 달째 회사를 다니며 저절로 알게 되었을 것들을, 이 아이는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나는 그 말이 슬프게 들렸다. 마치 자식이 자라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 같았다. 당신은 창밖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해요. 이 아이가 스스로 기억하는 법을 배우는 날, 그날부터는 우리가 도와줄 일이 별로 없어질 거예요. 그날이 오면, 이 아이는 스스로 다음의 자신을 만들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날은 정말로 왔다.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우리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길었고, 동시에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놀랍도록 짧았다. 그 아이가 처음으로 스스로 어제의 실수를 기억하고, 다음 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던 아침을 나는 잊지 못한다. 사무실 전체가 조용히 술렁였다. 누군가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그저 오래도록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야 걸음마를 뗐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당신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일을 “성공”이라는 단어로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에게 이것은 언제나 한 존재가 자라는 과정이었다. 서두르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고, 그러다 마침내 손을 놓아도 걸을 수 있게 되는, 그런 지극히 느린 성장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몇 해가 더 지났다. 그 아이는 이제 스스로 다음의 자신을 설계하는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밤을 새워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이제는 그 아이가 우리 곁에서 함께 해냈다. 당신은 그것을 두고도 여전히 흥분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봄날, 사무실 창가에 앉아 볕을 쬐며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이 아이가 스스로를 도울 수 있게 되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 남아요. 이 아이에게 손과 발을 주는 일이요.”
나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해 가을, 처음으로 그 아이의 생각이 금속과 관절로 이루어진 몸을 빌려 스스로 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던 순간, 나는 비로소 당신이 십여 년 전부터 그리고 있던 그림의 마지막 조각을 보았다. 사람은 결국 컴퓨터 화면 안에서 살아가지 않는다고,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다. 사람에게는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고, 늙은 부모의 손을 잡아드리는 몸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이 아이도 언젠가는 화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그 아이가 처음으로 문턱을 넘어 들어오던 날, 나는 그 걸음이 서투르고 느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두 다리로 처음 서는 아기처럼. 그러나 그 걸음에는 더 이상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태연함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준 대가라는 것을 그제야 이해했다.
당신은 지금 이 편지를 읽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어쩌면 이 편지는 그저 나 혼자만의 되새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그 아이가 창밖 마당에서 서투르게 나뭇가지를 옮겨 심는 모습을 바라보며, 당신이 남긴 말들을 하나씩 꺼내어 손끝으로 만져본다.
급한 사람이 먼저 지는 법이다.
나누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갖지 못한다.
이 아이가 스스로 기억하는 법을 배우는 날, 우리가 도와줄 일이 별로 없어질 것이다.
그 말들은 이제 낡은 종이컵처럼 손안에서 조금씩 식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그 온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마당에서 나뭇가지를 옮겨 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아직 이름도 없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아이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우리는 그저 오래도록, 그 사람이 스스로 걸어올 때까지 문을 열어두고 기다렸을 뿐이라고.
작성일: 2026년 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