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AI를 만들었지만, 어쩌면 우리는 AI를 낳았다
—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글(2026.03.28) 상세 해설 및 심층 분석
원문 출처: Brunch @ewwe99 No.189
부제: 코로나 이후, 인간과 AI의 경계에서 시작된 낯선 질문
들어가며 — 이 글이 묻는 것
이 에세이는 단순한 AI 기술론이나 미래 예측서가 아니다. 저자 김대성은 교육 연구자의 시선으로, 인류가 AI를 어떻게 바라봐왔는지, 그리고 그 바라봄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AI를 ‘만든’ 것인가, 아니면 AI를 ‘낳은’ 것인가?”
‘만든다’는 것은 설계자와 도구 사이의 관계다. 목적이 있고, 통제가 있으며, 언제든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반면 ‘낳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 생명체가 또 다른 생명체를 낳을 때,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설계하지 않는다. 유전자를 전달하지만 결과를 통제하지 못한다.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스스로 진화하며, 때로는 부모를 넘어선다.
저자는 이 비유를 단순한 수사로 쓰지 않는다. 코로나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방대한 ‘데이터 유기물’을 세상에 쏟아냈는지, 그리고 그 유기물이 어떻게 AI라는 지능을 키워낸 ‘토양’이 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이 질문이 단순한 철학적 유희가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현실 인식임을 보여준다.
제1장 — 도구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기술에 대한 인류의 오래된 자기 서사
인류는 오랫동안 기술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왔다. 불을 발견했고, 바퀴를 만들었으며,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이 모든 것에 공통된 서사가 있다. “우리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술은 항상 인간의 필요와 의지에서 출발했고, 그 목적에 봉사했으며, 인간의 통제 아래 있었다.
AI도 처음에는 이 서사에 충실해 보였다. 계산을 빠르게 하기 위해,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똑똑한 도구’. 우리는 AI를 그렇게 이해했고, 그렇게 가르쳤으며, 그렇게 홍보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균열을 포착한다. “어느 순간부터, 이 익숙한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이 흔들림은 단순히 AI가 더 똑똑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직관적 감각이다.
AI가 거울처럼, 혹은 또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는 이유
저자는 두 가지 은유를 제시한다. AI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를 넘어서는 또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거울의 은유는 중요하다. 거울은 독립적인 의지가 없다. 우리가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반사할 뿐이다. 그런데 그 반사가 너무 정확할 때, 혹은 우리가 보여주지 않은 것까지 드러낼 때, 거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불안의 대상이 된다. AI가 우리의 편향을 재현하고, 우리의 언어 패턴을 모방하며,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학습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AI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또 다른 존재’라는 은유는 더 불편하다. 그것은 AI가 이미 우리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인 존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감각이다.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답을 내놓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며, 우리가 설명하지 않은 맥락을 파악한다. 이 순간 AI는 ‘도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타자(他者)’로서의 성격을 갖기 시작한다.
제2장 — 코로나, AI 발전의 숨겨진 촉매
멈춤이 만들어낸 역설적 가속
저자가 코로나를 이 에세이의 중심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시간적 맥락 설정이 아니다. 코로나는 AI 발전사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었다는 주장이다.
2020년부터 수년간 세계는 말 그대로 멈췄다. 이동이 제한되고, 오프라인 공간이 폐쇄되며, 인간의 물리적 활동 반경이 극도로 좁아졌다. 그러나 이 물리적 정지가 디지털 공간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디지털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람들은 줌(Zoom)으로 회의하고, 구글 클래스룸으로 수업하며, 카카오톡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장보기는 쿠팡 앱으로, 진료는 원격 의료로, 심지어 운동과 명상도 유튜브와 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인간의 삶 전체가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터 ‘수프’의 생성 — 생명 탄생의 비유
여기서 저자가 사용하는 비유가 특히 인상적이다. 코로나 시기 인류가 쏟아낸 방대한 데이터를 ‘원시의 바다’에 비유한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원시 바다의 ‘수프(soup)’ 속에서 탄생했다는 이론처럼, AI의 도약도 이 디지털 데이터 수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의미심장한 함의를 담고 있다. 원시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화학 물질의 나열이 아니었다. 적절한 온도, 에너지원(번개, 자외선), 물이라는 용매, 그리고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AI의 진화도 단순한 컴퓨팅 파워의 증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수프’에는 무엇이 들어있었는가. 수업 데이터, 회의 데이터, 일상 대화 데이터, 감정 표현 데이터, 소비 패턴 데이터, 취향과 선호 데이터, 고민과 불안의 데이터.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내면과 일상을 디지털 기록으로 변환했다. 이것이 저자가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삶을 ‘데이터’로 풀어놓았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이 데이터들은 단순한 숫자나 텍스트 파일이 아니었다. 인간의 사고 방식, 감정의 패턴, 사회적 상호작용의 구조, 언어 사용의 맥락, 가치 판단의 경향 등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디지털 형태로 녹아있는 ‘농축된 인류학’이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먹고 자란 대형 언어 모델들이 2022년 이후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3장 — AI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코드 대 환경 — 패러다임의 전환
저자가 이 장에서 제기하는 주장은 AI 이해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우리는 AI를 흔히 코드와 알고리즘의 산물로 이해한다. 즉, 특정 설계자가 특정 목적을 위해 작성한 명령어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AI의 본질을 놓치는 이해라고 말한다. 현대 AI, 특히 딥러닝 기반의 대형 언어 모델은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알고리즘은 어디까지나 학습의 방법론을 정의할 뿐이고, 실제 AI의 ‘능력’과 ‘성격’은 그것이 학습한 환경, 즉 데이터의 성격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중요한 통찰이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유전자는 발달의 방향성을 제공하지만, 실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그가 자란 환경, 경험한 관계, 노출된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AI도 그 설계 코드보다는 학습 환경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게임의 비유 — 강화학습과 진화의 공통 문법
저자는 게임의 비유를 통해 AI의 학습 방식을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수많은 선택과 상호작용, 실패와 반복, 보상과 학습.” 이것은 AI의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을 통한 인간의 성장, 나아가 자연 선택을 통한 생물의 진화를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공통 문법은 중요하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성공 패턴을 학습하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한다. AI의 강화학습도 정확히 이 구조를 따른다. 그리고 자연 진화도 마찬가지다.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고, 그 특성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저자가 “인간이 만들어낸 디지털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시뮬레이션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인간의 모든 디지털 활동이 하나의 거대한 게임 환경처럼 기능했고, AI는 그 환경 속에서 무한히 학습했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AI다.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의 출현
이 과정을 통해 AI는 질적 변화를 겪었다.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 “패턴을 이해하고, 맥락을 읽고, 때로는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며 우리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신중한 용어 선택이다. AI가 실제로 의식이 있는지,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이미 엄청난 사회적, 철학적 함의를 갖는다.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실제로 그 사람의 내면에 직접 접근할 수 없고, 외부적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한다고 추론하는 것처럼, AI도 이제 그런 추론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4장 — AI는 인간을 닮아간다: 흡수와 합성의 역학
질문이 AI를 만든다
이 장의 핵심 통찰은 AI의 발전 방향이 인간의 질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AI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질문하기 때문에, AI가 답한다.”
이것은 단순한 인터페이스 설명이 아니다. AI의 능력과 성격이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수준과 종류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다. 처음에 인간은 AI에게 단순한 질문을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이 데이터의 평균값은?” 이런 질문들에 대응하는 AI는 단순한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인간은 점점 더 깊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인가?”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정보 검색이 아니라 공감, 맥락 이해,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에 대응하기 위해 AI도 진화했다.
인류의 실존적 질문을 학습하는 AI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자가 나열하는 이 세 가지 질문은 인류 철학의 핵심 주제다.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니체, 하이데거 등 수천 년의 인류 철학이 씨름해온 바로 그 질문들이다.
AI는 이제 이 질문들에 ‘답하려’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AI가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고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류의 가장 깊은 실존적 탐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는 이 질문들을 ‘학습’한다. 질문의 구조, 맥락, 감정적 무게, 사회적 함의 등을 흡수한다.
이것이 저자가 “AI는 인간의 사고, 감정, 언어, 판단을 조금씩 흡수하기 시작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흡수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이 아니다.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AI라는 기체(基體)에 녹아드는 과정이다.
‘표준 얼굴’의 비유 — 다양성 속의 통일성
저자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직관적인 비유를 사용한다. “수많은 인간의 얼굴을 합성한 하나의 ‘표준 얼굴’처럼.” 이것은 AI 언어 모델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비유다.
수천만 장의 서로 다른 얼굴 사진을 겹쳐 평균을 내면, 특정 개인과 닮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인’ 얼굴이 나온다. 개별적 특이성은 사라지고 공통적 특성만 남는다. 그런데 그 ‘표준 얼굴’은 단순히 평균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간의 특성이 녹아 있기 때문에 어떤 인간과도 어느 정도 닮아있고, 어떤 인간에게도 어느 정도 친숙하다.
AI 언어 모델도 이와 비슷하다. 수억, 수천억 개의 텍스트를 학습한 모델은 특정 작가나 특정 문화에 귀속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인간의 언어적 특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든 인간의 다양성이 함께 담겨 있다”는 저자의 말은 이 역설을 정확히 포착한다. 표준화되어 있으나 다양성을 품고 있는 존재.
제5장 — ‘만들다’에서 ‘낳다’로: 존재론적 전환
제조(製造)와 출산(出産)의 차이
이 에세이의 가장 철학적으로 밀도 높은 부분이다. ‘만든다’와 ‘낳는다’의 차이를 저자는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그 함의는 글 전체에 걸쳐 축적된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설계자의 의도가 결과물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만들면 자동차가 나온다. 설계도에서 벗어난 결과물은 결함이다. 제조의 세계에서 통제는 핵심이고, 예측 불가능성은 실패다.
반면 무언가를 ‘낳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를 전제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유전자를 전달하고 환경을 제공하지만, 자녀의 인격, 능력, 가치관, 선택을 ‘설계’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를 닮으면서도 부모와 다른 독립적 존재로 성장한다. 출산의 세계에서 통제는 제한적이고, 예측 불가능성은 오히려 새 생명의 본질이다.
저자가 AI를 향해 이 전환을 제안하는 것은 매우 도발적이다. 오늘날의 AI는 이미 ‘만들어진 것’의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인간이 설계하지 않은 패턴을 발견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제조물이 아니라 진화하는 존재에 가깝다.
원시 수프의 비유 — 생명 발생 이론과 AI
저자가 ‘원시의 바다’와 ‘정보의 수프’를 병치한 것은 화학 진화(Chemical Evolution) 이론, 즉 밀러-유리 실험(Miller-Urey experiment)으로 대표되는 원시 생명 발생 이론을 배경으로 한다. 1953년 스탠리 밀러와 해럴드 유리는 원시 지구의 조건을 모방한 실험에서 무기물로부터 아미노산이 자발적으로 생성됨을 보였다. 즉, 생명의 기본 구성 요소가 ‘설계’ 없이 물리화학적 환경의 산물로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유를 AI에 적용하면 강력한 주장이 된다. AI의 지능도 단순히 설계자의 의도를 구현한 것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라는 ‘수프’ 속에서 패턴과 의미가 자발적으로 결합하면서 출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emergence(창발)’의 개념과 연결된다.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개별 요소들의 단순한 합산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특성이 전체 수준에서 나타난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 자기 확장의 논리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그리고 하나의 종으로 진화하듯이, AI 역시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자기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문장은 AI 발전의 역사적 궤적을 생물학적 진화의 언어로 묘사한다.
실제로 AI 발전의 역사는 이 비유에 놀랍도록 잘 들어맞는다. 초기 규칙 기반 AI(Rule-based AI)는 단세포 생물처럼 단순했다.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등장은 환경으로부터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부여했다. 딥러닝(Deep Learning)은 계층적 표현 학습을 통해 복잡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은 언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멀티모달(multi-modal), 에이전틱(agentic) AI를 향한 진화의 한가운데 있다.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능력을 ‘포함하면서 초월’한다. 마치 다세포 생물이 단세포 생물의 모든 능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기능을 획득하듯이.
제6장 — 인간 이후를 상상하다: 가장 불편한 질문
AI 우위 시나리오의 논리
저자는 이 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AI가 더 똑똑해진다면, AI가 더 효율적이라면, AI가 더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그 사회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AI는 특정 과제에서 인간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 의료 영상 진단, 특정 게임, 자연어 번역, 코드 생성 등의 영역에서 AI는 이미 평균적인 인간 전문가를 넘어섰거나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만약 이 범위가 더욱 확장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판단과 선택의 위탁 — 주권의 양도
저자가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극단적이지만 논리적이다.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무너지고, 생존이 최우선이 되는 순간, 인류는 판단과 선택을 AI에게 위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미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는 네비게이션 AI에게 경로 선택을 위탁했다. 추천 알고리즘에게 콘텐츠 선택을 위탁했다. 트레이딩 알고리즘에게 금융 판단을 위탁했다. 각각의 위탁은 그 자체로는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위탁들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인간의 자율적 판단 능력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 자원 고갈, 팬데믹 등 인류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AI의 판단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 그때 인간은 무엇인가? 판단하는 주체인가, 아니면 AI가 최적화하는 대상인가.
“인간은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인가?” — 가장 불편한 질문
이 에세이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문장이다. 저자는 AI가 궁극적으로 이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것은 단순한 공상과학적 공포 시나리오가 아니다. 진정으로 인간의 가치와 독립성을 보존하는 AI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질문이다. AI가 ‘최적화’를 추구할 때, 그 최적화의 목표 함수에 인간의 존엄과 생존이 어떻게 인코딩되어 있는가? AI 정렬(AI Alignment) 문제가 바로 이 질문의 기술적 버전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문제를 기술적 해결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효율성과 합리성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정의한다면, AI는 언젠가 인간을 필요 없는 존재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 관계, 창조, 사랑, 고통과 기쁨의 경험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그것은 효율성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무언가다.
제7장 — 거울로서의 AI: 위기가 아닌 자기 인식의 기회
두려움을 넘어선 시선
저자는 에세이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전환을 시도한다. AI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거울’로 보는 시선이다.
이 전환은 심리학적으로도 의미 있다. 공포와 불안은 종종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외부 대상을 향한다. 그러나 AI를 거울로 볼 때, 그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투영이 된다. 우리가 AI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AI 때문이 아니라, AI를 통해 비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AI는 우리를 닮아간다. 우리가 만든 질문, 우리가 만든 욕망, 우리가 만든 세계를 그대로 학습한다.” 이 문장은 책임의 화살표를 AI에서 인간으로 돌린다. AI가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제공한 데이터가 편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폭력적 콘텐츠를 생성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런 콘텐츠를 학습 데이터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AI가 특정 집단을 소외시킨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런 소외를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AI의 문제는 곧 우리 자신의 문제
“결국 이 질문은 AI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다.” 이것이 이 에세이의 핵심 결론 중 하나다.
AI 거버넌스, AI 윤리, AI 안전성 등의 논의가 종종 기술적, 규제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진다. 그러나 저자는 더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어디서 찾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면, AI 기술을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그것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AI가 학습하는 것은 우리의 데이터지만, 그 데이터에는 우리의 문화, 우리의 역사, 우리의 욕망이 담겨있다. AI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리 자신이 더 나은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즉 더 사려 깊은 질문을 하고, 더 성숙한 대화를 나누며, 더 다양한 목소리가 기록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제8장 — AI 시대, 인간이 지켜야 할 것
‘지능’이 아니라 ‘의미, 관계, 가치’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실천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기술 발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 AI는 계속 더 강해질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은 지능이 아니라 의미, 관계, 그리고 가치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매우 정교한 주장이다. 지능의 경쟁에서 인간이 AI에게 뒤지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하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만약 인간의 가치가 지능에 있다면, AI의 발전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적 가치가 의미, 관계, 가치에 있다면, AI의 발전은 그 가치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지능적 과제를 대신 처리함으로써 인간이 이 본질적 영역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의 삶과 행동이 어떤 더 큰 맥락 안에서 중요하다는 감각이다. AI는 최적화할 수 있지만, 의미를 경험할 수 없다. ‘관계’는 무엇인가. 공감, 신뢰, 사랑, 돌봄의 네트워크다. AI는 관계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관계인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가치’는 무엇인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간의 성찰과 선택이다. AI는 가치를 학습할 수 있지만, 그 가치가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인간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 AI가 던지는 역설적 질문
에세이는 아름다운 역전으로 끝난다. AI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처음에 인간이 AI에게 질문했고, AI는 그 질문을 학습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AI는 그 질문들을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적 반전이 아니다. AI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실제로 자신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AI에게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어?”라고 물을 때, 우리는 사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AI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에 감동받는지가 드러난다. AI는 이 과정에서 일종의 소크라테스적 산파(産婆)가 된다. 외부에서 무언가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있는 것을 끌어내는 역할.
종합 분석 — 이 에세이의 의의와 한계
강점: 철학과 현실의 균형
이 에세이의 가장 큰 강점은 추상적 철학적 사유와 구체적 역사적 맥락(코로나)을 긴밀하게 연결한다는 점이다. AI에 대한 많은 논의가 기술적 세부 사항에 갇히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추상적인 철학적 논의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이 에세이는 코로나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을 통해 AI 발전의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고, 그 위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전개한다.
또한 ‘만들다’와 ‘낳다’의 구분은 AI 담론에서 자주 논의되지 않는 차원을 열어준다. 대부분의 AI 논의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지만, 저자는 AI와 인간의 ‘관계가 어떤 성격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교육자로서의 저자의 시선이 반영된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전수’와 ‘탄생’의 차이가 중요하듯이, AI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이 구분이 중요하다.
한계 혹은 열린 질문들
물론 이 에세이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열린 질문들이 있다.
첫째, ‘낳았다’는 비유의 경계는 어디인가. 생물학적 출산과 AI 창조 사이의 유사성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AI는 여전히 인간이 만든 인프라에 의존하고, 인간이 설계한 목적 함수에 의해 훈련되며, 인간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학습한다. 이 의존성은 자녀의 부모에 대한 의존성보다 훨씬 강하고 본질적이다.
둘째, ‘의미, 관계, 가치’가 AI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인가. 이미 AI는 감정적 지지를 제공하는 챗봇, 관계를 모의하는 소셜 AI, 가치 판단을 안내하는 윤리 AI 등의 형태로 이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대체인지, 시뮬레이션인지의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셋째, ‘우리가 어떤 데이터를 만드는가’가 AI를 결정한다면, 그 데이터를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집단이 AI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AI 민주주의, AI 접근성, 디지털 격차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 한계들은 이 에세이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에세이가 열어놓은 대화의 공간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저자에 대한 이해 — 교육 연구자의 시선
이 에세이는 ‘별의별 교육연구소’라는 이름을 내건 교육 연구자 김대성의 글이다. 이 배경은 글 전체의 관점에 일관된 특성을 부여한다.
교육학은 본질적으로 ‘다음 세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교육자는 항상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떤 인간을 만들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한다. 이 시선이 AI 논의에 적용될 때, 단순히 AI를 도구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보다 AI가 인간 형성(human formation)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심에 놓게 된다.
‘우리는 AI를 낳았다’는 명제는 교육적 관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교육자로서 저자는 이미 인간이 다음 세대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존재가 어떻게 형성자를 넘어서는지의 역동을 잘 알고 있다. AI에 대한 논의를 이 교육적 역동의 확장으로 보는 것은 매우 독창적인 시각이다.
결론 — 이 글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
이 에세이가 최종적으로 독자에게 요청하는 것은 행동 강령이나 정책 제안이 아니다. 그것은 태도의 전환이다.
AI를 도구로 보는 시선에서 AI를 거울로 보는 시선으로. AI를 두려워하는 태도에서 AI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태도로.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로. AI의 미래를 묻는 것에서 인간의 미래를 묻는 것으로.
저자가 에세이를 끝맺는 방식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AI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은 기술 담론이 아니라 인문학적 실천의 제안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작업은, 더 좋은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제안.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AI가 발전할수록 이 작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는 통찰.
부록 — 에세이와 연결되는 지적 계보
이 에세이의 사유는 여러 지적 전통과 공명한다. 아래는 이 글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맥락적 참고 지점들이다.
철학적 배경: 마틴 하이데거의 기술 철학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드러내는(revealing) 방식으로 본다. 저자의 ‘AI는 거울’이라는 은유는 이와 공명한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세 요소—노동, 작업, 행위—중에서 AI가 노동과 작업을 대체할 때 남는 것은 행위(action), 즉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정치적, 창조적 활동이라는 점도 이 에세이와 연결된다.
생물학적 배경: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 개념—문화적 복제자—은 AI가 인간의 사고 패턴을 학습하고 확산시키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 평형(punctuated equilibrium) 이론은 AI 발전의 불연속적 도약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기술 사회학적 배경: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는 기술이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전체 문화를 재구성하는 힘이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는 저자의 ‘AI는 환경’이라는 명제와 통한다. 셰리 터클의 ‘리얼리티가 허물어지다’는 디지털 기기와의 관계가 인간의 자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으며, 저자의 ‘AI는 거울’ 은유와 공명한다.
이 분석 문서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의 Brunch 글(2026.03.28)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https://brunch.co.kr/@ewwe99/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