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빼앗은 '축적의 시간': 주니어는 미숙련자로 남겨질 위기
— 기사 분석 및 비판적 재검토
- 원문: 중앙일보 〈더 롱뷰(The Long View)〉, 손해용 경제산업기획부국장, 2026.03.11
- 데이터 출처: 한국은행 (2024년 10월 보고서)
- 이 문서는 기사의 주요 논지를 정리하되, 각 주장에 대한 반론과 비판적 시각을 함께 제시한다.
1. 개요
인간의 노동 가치는 전통적으로 땀과 시간, 즉 경험의 축적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보급 이후 이 가치 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AI는 데이터 처리 능력과 연산 속도를 앞세워 거의 전 업종에 걸쳐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은 단순한 고용 감소를 넘어 산업 구조 자체의 변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서는 중앙일보 〈더 롱뷰〉의 문제 진단을 충실히 정리하면서, 동시에 기사가 제시하는 역사적 비유와 정책 처방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 AI의 확산: 광고부터 법률까지
기사의 주장
가장 극적인 변화는 광고 제작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AI 광고 제작사의 등장으로 AI 모델과 성우가 출연하는 10초 영상이 120만 원, 30초 영상이 360만 원에 제작 가능해졌다. 제작 기간도 1주일이면 충분하다. 유명 모델이 출연하는 실사 영상은 10초에 수억 원, 한 달 이상이 소요되던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법률·회계·세무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저연차 변호사들이 밤새 판례를 찾으며 실무를 익히던 과정을 AI가 대신하면서, 대형 로펌에서는 “비용을 들여 초짜를 키울 유인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반론 및 보완적 시각
AI 대체가 빠른 것은 사실이나, 기사는 저가형 광고 시장의 사례를 전체 산업에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부가가치 영역—브랜드 정체성을 담은 장기 캠페인, 법적·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고난도 자문—은 여전히 인간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또한 AI가 법률 리서치를 대체하더라도, 그 결과물을 검증하고 책임지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가 ‘초짜를 키울 유인’을 없앤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존재하던 로펌의 신입 착취 구조—저임금 장시간 노동—가 AI를 만나 더 노골화된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3. 핵심 문제: ‘경험의 사다리’ 소멸
기사의 주장
숙련된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사소하고 반복적인 초급 업무의 축적이 숙련을 만들고, 그 토대 위에서 비로소 전문가가 성장한다. 광고 현장의 막내 스태프, 추운 날씨에도 수백 번 포즈를 취하는 무명 모델, 산더미 같은 전표와 씨름하는 신입 회계사—이들이 몸으로 체득하는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 가 바로 미래 전문가의 씨앗이다.
그런데 AI가 이 ‘중간 단계의 직무’를 가장 빠르게 대체하면서 암묵지의 전승 통로가 끊기고 있다. 기업은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기보다 처음부터 생산성을 낼 수 있는 경력자를 외부에서 조달한다. 노동시장은 허드렛일 하는 초보자와 소수의 고숙련자만 남고, 산업의 중간 허리가 비어간다는 것이다.
반론 및 보완적 시각
이 진단은 기사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째, ‘암묵지’의 전승 방식이 반드시 과거 방식이어야 하는가. AI를 활용해 새로운 유형의 숙련을 쌓는 경로—AI 출력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하는 능력, AI와 협업하는 프로세스 설계 능력 등—가 등장하고 있다. 사다리의 형태가 변하는 것이지 사다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인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둘째, 기사가 묘사하는 과거의 ‘경험 축적’ 과정이 언제나 정당했는가. 신입이 밤새 판례를 찾고, 막내가 밤새 소품을 나르던 구조는 학습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정당화 기제이기도 했다. AI가 그 구조를 해체한다면 반드시 나쁜 일인지도 되물어볼 여지가 있다.
4. 통계로 보는 현실
4-1. 한국은행 보고서 (2024년 10월)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ChatGPT 출시 이후 3년간(2022년 11월~2025년) AI 고노출 업종에서 청년 일자리 변화는 다음과 같다:
| 업종 | 청년 고용 변화율 |
|---|---|
| 정보 서비스업 | −23.8% |
| 출판업 | −20.4% |
|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 −11.2% |
| 전문 서비스업 | −8.8% |
| 교육 서비스업 | −4.8% |
| 보건업 | +1.3% (유일한 증가) |
지난 3년간 청년층 일자리 21만 1,000개가 감소했는데, 이 중 20만 8,000개(98.6%)가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되었다. 반면 30~59세 핵심 연령층 경력자들은 고용 증가세를 유지했다.
4-2.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업종의 세대별 분화
ChatGPT 출시 시점(2022년 11월)을 기준값 100으로 설정했을 때:
- 핵심 연령층(30~59세): 76.2 → 119.7 (약 +57%)
- 청년층(15~29세): 72.6 → 88.8 (약 −11%)
ChatGPT 출시 이전까지 두 연령대는 유사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2022년 11월을 기점으로 두 선이 극적으로 갈라지는 ‘가위 모양’ 분기가 나타났다. 같은 산업, 같은 시기에 고경력자는 약진하고 청년층은 도태되는 현상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4-3. 해외 연구 결과
- 에릭 브리뇰프슨(스탠퍼드대) 연구팀: AI 도입 기업에서 초년 인력 채용이 급감한 반면, 고경력자 고용은 오히려 증가.
- 세예드 호세이니·가이 리히팅거(하버드대 경제학과): 유사한 시기에 동일한 결론 도출.
5. ‘경험의 양극화’가 가져올 중장기 파장
고려대 신관호 교수는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지면 후속 세대는 인적자본을 축적할 길이 막힌다”고 진단한다. 예상되는 파장은 다음과 같다:
- 청년 실업의 구조화 — 취업의 입구 자체가 사라지면서 청년층의 고용 불안 심화
- 미래 전문가 풀의 고갈 — 중견 전문가층이 증발하여 산업 생태계의 ‘허리’가 공동화
- 암묵지 단절 — 세대 간 지식 전수 경로가 끊겨 장기적 산업 경쟁력 저하
- 개인의 영구적 불이익 — 성장 기회를 잃은 주니어들이 미숙련자로 고착될 위기
6. 해법을 둘러싼 논쟁
6-1. AI 과세론
기사의 입장: AI로 이익을 낸 기업에 과세하여 실업보험과 재교육 재원을 마련하자는 구상은 이중과세인 데다 혁신에 페널티를 주는 시대역행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반론: 이 비판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토지세, 탄소세 등 인류는 ‘외부 비용을 유발하는 활동’에 과세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AI 도입으로 사회적 비용(청년 실업, 사회 안전망 수요 증가)이 발생한다면, 그 비용을 이익을 얻는 주체가 일부 분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주장이다. 물론 세율·과세 방식·재원 사용처에 관한 세부 설계가 중요하며, 이 부분은 충분히 토론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기사는 AI 과세 자체를 구체적 검토 없이 “혁신 저해”로 일축한다.
6-2. 러다이트 운동의 역사적 교훈: 기사의 낙관론과 그 이면
기사의 주장: 19세기 초 영국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며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의 우려는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기계 도입은 새로운 서비스업 일자리를 창출했고, ‘새로운 숙련공의 시대’를 열었다. 인류가 더 큰 풍요로 나아간 비결은 기계와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운 데 있다고 기사는 결론짓는다.
반론: 누가 치른 대가인가
이 서술은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불완전하다. ‘결과적으로 잘 됐다’는 결론론은 전환 과정에서 희생된 세대들의 삶을 통째로 지워버린다.
- 아동 노동의 현실: 산업혁명기 영국에서는 5 ~ 6세 아이들이 하루 12 ~ 16시간씩 탄광과 방적 공장에서 일했다. 탄광에서는 좁은 갱도를 기어다니며 석탄 수레를 끌었고, 방적 공장에서는 기계 밑에 들어가 끊어진 실을 잇는 역할을 했다. 작은 몸이 ‘효율적’이라는 이유였다. 1833년 공장법이 겨우 통과되기 전까지 이것은 합법이었다.
- 여성 노동자의 희생: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임금의 3분의 1 수준을 받으며 동일한 노동을 했다. 방적 공장의 면 분진으로 인한 폐병이 만연했고, 기계 사고로 손가락과 팔을 잃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 숙련공들의 몰락: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킨 직물 숙련공들은 단순히 변화를 두려워한 게 아니었다. 수십 년간 쌓은 기술이 하루아침에 무가치해지면서 가족이 굶주렸고, 일부는 실제로 아사했다. ‘새로운 숙련공의 시대’는 그들의 자녀, 혹은 손자 세대가 되어서야 열렸다.
- 전환의 시간: 산업혁명이 시작된 1760년대부터 생활 수준이 뚜렷이 개선되기까지는 약 80~100년이 걸렸다. ‘결국 좋아졌다’는 말이 사실이라도, 그 기간 동안 희생된 사람들에게 그 결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
기사는 이 모든 맥락을 생략한 채 “기계와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다”는 깔끔한 결론을 제시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낙관적 편집이다. AI 전환에 관한 논의에서도 같은 위험이 있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금 이 순간 진입 장벽에 막혀 경력을 쌓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희석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6-3.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처방
기사의 주장: 성균관대 김덕호 교수를 인용하며, 강력한 해고 규제·연공서열 임금체계·최저임금제가 결합되어 기업이 신입을 ‘고비용 위험 자산’으로 간주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청년실업의 주범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자발적 혁신과 노동, 유연한 시장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법제도”라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시장 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개혁과 불필요한 규제 철폐”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론: 논리의 비약과 이념적 편향
이 처방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인과관계의 혼동이다. 기업이 신입을 뽑지 않는 1차적 이유는 AI가 그 업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해고가 쉬워진다고 해서 AI보다 비싼 신입을 더 채용할 이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AI 도입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를 노동자 보호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둘째, 역사적 반례가 존재한다. 기사가 부정적 사례로 드는 ‘규제 없는 노동시장’이 산업혁명기 영국이었다. 그 결과가 아동 노동과 여성 착취, 도시 빈민층의 폭발적 증가였다. 반면 덴마크·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노동 보호를 유지하면서도 높은 청년 고용률을 기록한다. ‘노동 유연화 = 고용 증가’라는 등식이 보편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셋째, 이미 진행 중인 유연화의 부작용이다. 한국에서 비정규직·플랫폼 노동·특수고용 형태는 이미 크게 확산되어 있다. 이 ‘유연화’된 노동 형태에서 청년들의 경험 축적과 숙련 형성이 더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오히려 짧은 계약 기간과 불안한 고용 상태가 장기적 인적자본 투자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넷째, 기사의 결론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사는 ‘AI로 인한 청년 고용 위기’라는 복잡한 구조적 문제를 시작하여, 재계와 보수 언론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친기업적 노동개혁론으로 수렴시킨다. 문제 진단(경험의 사다리 소멸)은 날카로웠지만, 처방은 AI와 무관하게 이미 준비된 결론처럼 보인다.
7. 결론: 더 정직한 질문이 필요하다
기사의 핵심 문제 진단—AI가 중간 단계 직무를 대체하여 경험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유효하고 중요하다. 한국은행 통계가 보여주는 세대별 고용 분기 현상은 그 자체로 심각한 경고등이다.
그러나 기사는 이 진단에서 출발하여 두 가지 지점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하나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선택적으로 읽어 낙관적 전망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결국 잘 됐다’는 결과론은 전환 과정에서 한 세대가 치른 고통을 지워버린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나중에 잘 될 것”이라는 말로 위로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처방이 AI 문제에 대한 분석적 결론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된 이념적 결론처럼 기능한다는 점이다. AI가 초래하는 구조적 문제는 노동 규제 완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 필요하다.
- AI로 발생하는 생산성 이익을 누가 가져가고, 그 비용은 누가 치르는가?
- 기업의 합리적 선택(AI 대체, 신입 미채용)이 사회 전체에 부과하는 외부 비용을 어떻게 내부화할 것인가?
- 경험 축적의 경로가 바뀌는 시대에, 새로운 방식의 숙련 형성 경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 전환 과정에서 희생되는 세대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AI는 결과를 줄 수 있지만 노하우는 주지 않는다는 기사의 통찰은 정확하다. 마찬가지로, 좋은 정책도 선언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정직하게 직시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이 문서는 중앙일보 〈더 롱뷰〉 2026년 3월 11일자 기사와 한국은행 통계 자료를 토대로, 기사의 논지와 그에 대한 비판적 반론을 함께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