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과 회계사 업무 부담 — 기대와 현실의 간극
조선비즈 설문조사(2026.04.02) 및 관련 최신 보도를 종합 분석한 심층 리포트
목차
- 차트 해설: 무엇을 묻고, 무엇이 나왔는가
- 배경: ‘자본주의 파수꾼’이 흔들리다
- 설문 결과의 세 가지 목소리
- 왜 AI는 업무를 줄이지 못하는가 — 네 가지 구조적 이유
- 타임이팅(Time-eating) — 숫자를 지우는 관행
- ‘AI 핑계’로 감사 시간을 20% 줄이다
- 채용 시장의 변화 — 수습 회계사의 위기
- 회계법인들의 AI 투자 현황
- 과로사가 드러낸 구조적 모순
- 전문가들의 진단: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 더 넓은 맥락: AI 전환기의 노동 역설
- 결론: AI의 기름이 부어진 치킨게임
1. 차트 해설: 무엇을 묻고, 무엇이 나왔는가 {#1-차트-해설}
이 차트는 조선비즈가 2026년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물이다. 조사 대상은 현직 또는 전직 회계법인 종사자로 인증된 인원으로 한정됐으며, 유효 응답자 수는 229명이었다.
질문의 핵심은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AI 도입 이후 업무 부담이 달라졌는가?” 이 한 문장이 요즘 회계업계를 달구고 있는 논쟁의 진앙이다.
결과는 도넛 차트 형태로 시각화되어 있으며, 세 가지 응답 항목별 비율은 다음과 같다.
| 응답 항목 | 비율 | 응답 인원 |
|---|---|---|
| 오히려 업무가 늘었다 (빨간색) | 23.6% | 54명 |
| 변화 없다 (회색) | 57.6% | 132명 |
| 도움 된다 (파란색) | 18.8% | 43명 |
차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회색 영역 — ‘변화 없다’고 답한 57.6% — 은 AI 도입의 실질적 효과가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다음 숫자다. ‘업무가 늘었다’는 응답(23.6%)이 ‘도움 된다’는 응답(18.8%)을 약 5%포인트 앞질렀다. 도입의 명분과 현장의 경험이 정반대로 역전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설문에 응답한 회계사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은 AI 때문에 일이 더 늘었다고 느끼고 있다. 반면 AI가 실제로 도움이 됐다고 체감한 사람은 다섯 명 중 한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긍정적 효과’를 경험한 집단보다 ‘부정적 효과’를 경험한 집단이 더 많다는 것, 이것이 이 차트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다.
2. 배경: ‘자본주의 파수꾼’이 흔들리다 {#2-배경}
공인회계사(CPA)는 오랫동안 ‘자본주의 파수꾼’이자 ‘전문직의 꽃’으로 불려왔다. 기업의 재무 정보가 신뢰할 수 있는지를 독립적으로 검증하는 역할, 즉 회계감사는 자본시장 전체의 투명성과 직결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이 전문직이 최근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매년 12월 결산 법인들의 사업보고서 제출이 집중되는 1월~3월 이른바 ‘감사 시즌’이 되면 회계사들의 근무 강도는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치솟는다. 스스로를 ‘결산 노예’라고 부를 정도다.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에 걸쳐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정KPMG에서 30대 회계사 두 명이 잇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회계업계의 과로 구조가 전면적으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경향신문, 한국경제, 조선비즈 등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심층 취재에 나섰고, 이번 설문조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다.
이 사태의 복잡한 원인들 중에서도 특히 AI 도입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회계법인들이 “AI로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며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그 효과가 체감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인력 감축과 감사 보수 인하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3. 설문 결과의 세 가지 목소리 {#3-설문-결과}
3-1. “변화 없다” — 침묵하는 다수의 체념
57.6%(132명)에 달하는 가장 큰 집단, ‘변화 없다’는 응답은 단순히 중립적인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AI 도입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실질적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곧 투자 대비 효과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회계업계는 최근 수년 동안 AI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었다. 삼일회계법인은 AI 챗봇 ‘AI Accountant’를 선보였고, 삼정회계법인은 감사 플랫폼 ‘KPMG Clara’에 생성형 AI를 접목했으며 감사 자료 검색 시스템 ‘AuditSay’도 개발했다. 이처럼 업계 전체가 AI 전환을 선언하는 상황에서도 일선 회계사들의 60% 가까이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한 것은 기술 투자와 현장 체감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보여준다.
3-2. “오히려 늘었다” — 23.6%가 증언하는 역설
전체 응답자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54명은 AI 도입 이후 업무 부담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드러난다.
첫째, AI를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절차가 추가되었다. AI 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하고 검증하는 업무 자체가 기존에는 없던 작업이었다. 둘째, AI가 업무를 일부 자동화한다는 이유로 총 감사 시간을 줄이라는 압박이 생겨났다. 더 짧은 시간 안에 같은 수준의 감사를 완수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셋째,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사람이 다시 검증해야 하는 이중 작업이 생겼다. AI의 오류(할루시네이션)를 잡아내는 교차 검증 작업이 새로운 부담으로 추가된 것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30대 회계사 김모씨는 새벽 3시 30분에 퇴근한 뒤 2시간 수면 후 다시 출근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AI로 다 할 수 있으면 그 시간에 퇴근하겠느냐.”
3-3. “도움 된다” — 18.8%가 경험한 긍정
43명은 AI 도입이 실제로 업무 경감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체감한 영역은 주로 자료 검색, 번역, 문서 요약, 숫자 검증 등 단순하고 반복적인 보조 업무들이다. 저연차 회계사들이 주로 맡아왔던 이런 업무들에서는 AI가 실제로 시간을 절약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 숫자를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사람(18.8%)보다 오히려 일이 늘었다고 느끼는 사람(23.6%)이 더 많다는 사실은, AI의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부작용을 아직 상쇄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4. 왜 AI는 업무를 줄이지 못하는가 — 네 가지 구조적 이유 {#4-구조적-이유}
4-1. 할루시네이션: AI의 자신 있는 거짓말
생성형 AI의 가장 대표적인 한계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다. 없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거나, 있는 사실을 맥락 없이 왜곡하는 오류 현상이다. 일반적인 정보 검색에서는 이를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지만, 회계감사는 다르다. 재무제표의 단 하나의 숫자가 틀려도 기업 전체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고, 외부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회계사들은 AI가 만들어낸 모든 결과물을 다시 한번 사람이 검토해야 한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A씨는 “AI 도입으로 보고서 작성 방식이 바뀌면서 검토해야 할 항목이 늘어났다”고 했다. 8년차 회계사 김모씨도 “회사에서 AI 활용을 권장하지만 오류와 할루시네이션 때문에 사람이 다시 검토해야 해 오히려 부담된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10년차 회계사의 사례도 있다. “같은 항목의 숫자여도 재무제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들어가는 수치가 다를 때가 있는데, 인간은 맥락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AI는 그 판단을 아직 하지 못한다.”
4-2. 보안 문제: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AI
회계 감사에서 다루는 정보들은 기본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기업 기밀이다. 기업이 제공하는 감사 자료(PBC, Prepared by Client), 내부 재무제표, 계약서 등을 외부 AI 서비스에 입력했다가 정보가 유출되면 법적, 윤리적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일부 회계법인은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의 사용을 자체 보안 정책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5년차 회계사 이모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보안 때문에 시중 AI를 자유롭게 쓸 수 없고 데이터 업로드가 막혀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이 거의 안 된다. 리서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결국 회계업계는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외부의 기대와, 보안상 이유로 AI 활용이 제한된다는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4-3. AI 학습의 역설: 훈련할수록 일이 는다
자체 AI를 개발하고 고도화하려면 감사 조서, 과거 자료 등을 AI에 학습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학습 과정 자체가 막대한 인력과 시간을 소모하는 작업이다. 한 감사팀 직원은 “고객들 조서를 AI에 학습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업무 시간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AI를 잘 쓰기 위해 오히려 일이 더 많아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4-4. 맥락과 판단: AI가 아직 못 하는 것
회계감사의 본질은 숫자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기업 경영진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고 부정(fraud)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있다. 이 영역에서 현재의 AI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낸다. 결국 AI가 처리하는 영역은 표면적인 데이터 처리이고, 그 결과를 해석하고 책임지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5. 타임이팅(Time-eating) — 숫자를 지우는 관행 {#5-타임이팅}
이 기사 시리즈의 제목 ‘분노의 회계사’에 담긴 현상을 가장 잘 압축하는 개념이 ‘타임이팅(Time-eating)’이다. 이는 회계사들이 실제로 일한 시간을 그대로 기록하지 못하도록 압박받는 관행을 뜻한다. 즉 근무 기록을 축소하여 초과 근무가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타임 치팅’ 또는 ‘유령 근무’라는 표현도 쓴다.
이 관행은 2000년대 이후 회계법인들이 감사 수임 경쟁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감사 표준 투입 시간(타임)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데서 비롯됐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더 체계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새벽까지 일하고도 기록에는 퇴근 시간을 훨씬 앞당겨 적어야 하는 구조, 그것이 현직 회계사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 관행에 AI가 새로운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는 게 이번 취재에서 드러난 핵심 문제다. “AI로 업무 효율이 올랐으니 감사 시간을 줄여도 된다”는 논리가 경영진이나 파트너 레벨에서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AI가 그 정도의 효율을 실제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회계사들은 줄어든 감사 시간 안에 같은 양의 업무를 마쳐야 하고, 초과 근무를 해도 기록에 남기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에 빠진다.
6. ‘AI 핑계’로 감사 시간을 20% 줄이다 {#6-감사-시간-축소}
이 이슈를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한 대형 회계법인의 내부 지침이다. 해당 회계법인은 AI 도입을 이유로 기존 대비 감사 시간을 20% 축소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베스트조선의 취재에 따르면, 감사 수주전 현장에서도 “AI를 활용해 감사 표준투입시간을 20% 이상 절감하겠다”는 내용이 프레젠테이션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선언이 실제 기술 역량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즉 더 낮은 가격에 감사를 수주하기 위해 AI를 명분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중위권 회계법인 관계자는 “업계 선두 업체들이 20% 절감을 내세우는 마당에 그 이하에서는 더 큰 폭의 비용 절감을 내세워야 할 것”이라며 경쟁이 더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결국 이 치킨게임의 최종 피해자는 일선 회계사들이다. 감사 시간과 보수가 줄어드는 만큼 더 많은 업무를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해야 하고, 그 압박은 고스란히 현장 실무자에게 전가된다. 한 대형 회계법인 시니어급 회계사는 이 상황을 두고 “AI가 치킨게임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표현했다.
7. 채용 시장의 변화 — 수습 회계사의 위기 {#7-채용-시장}
AI가 현장을 구하지도 못하면서 인력 구조는 이미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그 충격은 특히 신입·저연차 회계사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수습 취업 현황을 보면 그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2021~2022년에는 CPA 합격 후 실무수습처를 찾지 못한 미취업 인원이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이 숫자가 114명으로 급증했고, 2025년 10월 기준으로는 합격자 1,200명 중 862명(약 72%)이 수습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수치가 공개됐다.
수습처를 찾은 이들도 338명뿐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4대 회계법인의 신입 채용 규모가 2021~2022년에 비해 크게 줄었고, 그 공백을 AI가 부분적으로 채우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과거 저연차 회계사들이 맡아왔던 전표 대사, 단순 데이터 입력, 기초 검토 작업 등이 AI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신입 인력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 회계법인에서는 “매니저 아래에 여러 스텝이 붙는 구조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와 막내만 두고 중간 인력을 줄이려 한다”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이는 단순한 고용 감소 문제를 넘어서 회계사 직업 자체의 커리어 패스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연차 시절 단순 업무를 통해 현장 감각과 전문성을 쌓아가는 전통적인 성장 경로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8. 회계법인들의 AI 투자 현황 {#8-회계법인-AI-투자}
그렇다면 회계법인들은 실제로 어떤 AI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가? 현재 공개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일회계법인(PwC Korea) 은 AI 챗봇 ‘AI Accountant’를 도입했다. 문구 정리, 자료 검색, 요약, 숫자 검증 등 보조 업무를 AI에 위임하는 방식이다. PwC 글로벌 차원에서는 AI 도입을 계기로 신입 회계사 교육과 실무 배치를 전면 개편 중이며, 2028년까지 신입 채용 규모를 최대 3분의 1 감축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삼정회계법인(KPMG Korea) 은 스마트 감사 플랫폼 ‘KPMG Clara’에 생성형 AI 기능을 접목했으며, 감사 자료 검색 시스템 ‘AuditSay’도 선보였다. AI 감사 에이전트 도입을 준비하고 전담 조직을 구성하는 등 감사·세무·컨설팅 전반에 AI를 접목하려 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역시 2026년도 운영계획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심사업무기간 단축과 디지털감리기법 확대 적용 방침을 밝혔다. 자산 3천억 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AI 기반 감리 기법을 적극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 발표와 내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현직 회계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도구들은 아직 “리서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감사 업무의 핵심인 판단과 맥락 해석은 여전히 인간 회계사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9. 과로사가 드러낸 구조적 모순 {#9-과로사}
2025년 11월,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정KPMG에서 30대 회계사 한 명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4개월 뒤인 2026년 3월에는 같은 법인에서 비슷한 연차의 또 다른 회계사가 새벽까지 근무를 이어오다 귀가 후 숨졌다. 두 사람 모두 8~10년차 매니저급이었고, 감사 시즌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이 사건들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회계업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업계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과로사의 구조적 배경으로는 복수의 요인이 지목된다. 첫째는 저가 수임 경쟁이다. 회계법인들이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해 감사 보수를 경쟁적으로 낮추고, 그로 인한 손실을 실무자의 무보상 연장 근로로 메우는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둘째는 타임이팅 관행이다. 실제 근무 시간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압박함으로써 노동법적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사실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구조다. 셋째가 바로 AI를 명분으로 한 감사 시간 축소다. 현장에서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AI 도입을 이유로 업무 시간을 줄이는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직 회계사들은 “AI가 모든 일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면서 책임과 스트레스만 늘었다”고 토로한다. 또 “감사 업무에 적정 시간과 인원을 투입하지 않는 한 결국 회계사들만 죽어갈 것”이라는 절박한 목소리도 나왔다.
10. 전문가들의 진단: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10-전문가-진단}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각계 전문가들과 회계업계 인사들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목소리들은 크게 두 방향으로 수렴된다.
단기적으로는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지금 당장의 격무 문제는 구조적 접근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장의 일치된 목소리다. 감사 표준 투입 시간의 현실화, 타임이팅 근절, 과도한 저가 수임 경쟁의 규제, 수습 회계사 채용 수요 창출 등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장기적으로는 업(業)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최운열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AI로 업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질적 경쟁력 강화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회계사의 역할이 단순 업무 대신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이동하는 만큼 시장 규모와 인력 구조의 재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공인회계사 선발 정책이 AI로 인한 구조적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것을 권한다. 일본은 세무 자동화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했음에도 AI 결과에 대한 최종 판단은 반드시 세무사가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효율성과 책임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설계한 구조가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있다는 평가다.
11. 더 넓은 맥락: AI 전환기의 노동 역설 {#11-더-넓은-맥락}
이 이슈는 사실 회계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계사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AI 전환기에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공통으로 직면하는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 의 한 단면이다.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면 그 효익이 노동자의 시간과 여유로 돌아오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AI가 만들어낸 효율이 가격 경쟁의 무기로 전환되어 오히려 노동 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경우가 많다. 맥킨지는 2023년 보고서에서 선진국 기준 전체 업무 시간의 약 25%가 생성형 AI로 자동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으며, 특히 재무·회계 등 데이터·문서 중심 직무에서 자동화 잠재력이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잠재력’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그 열매를 누가 가져가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회계업계의 경우, AI 효율화의 열매는 법인의 수임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실무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같은 혹은 더 적은 인원이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AI 시대의 노동 분배 문제가 기술의 성숙도와 별개로 제도적·조직적 설계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AI가 더 발전해도 이 분배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생산성 역설은 계속될 것이다.
12. 결론: AI의 기름이 부어진 치킨게임 {#12-결론}
조선비즈가 229명의 회계법인 종사자들에게 던진 질문 하나 — “AI가 도움이 됐습니까?” — 는 현재 AI 전환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응답자의 약 절반(57.6%)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고, 약 4분의 1(23.6%)은 오히려 일이 늘었다고 했다.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다섯 명 중 한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18.8%). AI 도입이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현장에서는 대체로 실패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AI가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오히려 감사 보수 인하와 인력 감축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노동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
AI는 분명 회계업계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의 자동화, 대규모 데이터 기반의 이상 징후 감지, 실시간 재무 분석 등은 AI가 이미 잘하거나 곧 잘하게 될 영역들이다. 하지만 그 전환이 회계사들에게 더 나은 일터를 가져다주려면,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조를 바꾸는 것, 즉 감사 시간을 현실화하고, 타임이팅 관행을 근절하고, AI 효율화의 과실을 구성원과 나누는 제도를 만드는 것 — 그것이 먼저다. 현장의 회계사들이 새벽에 퇴근하고 두 시간 자다 다시 출근하는 동안, 회계법인들이 AI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치킨게임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것은 법인도 AI도 아니라 그 사이에 낀 사람들일 것이다.
참고 자료
- 조선비즈 설문조사, 「[분노의 회계사]③ AI로 업무 덜겠다는데… “오히려 일 늘어”」, 김관래 기자, 2026.04.02
- 경향신문, 「대형 회계법인서 잇단 사망 왜···회사는 AI 핑계, 극한 과로 내몰리는 회계사들」, 2026.03.24
- 한국경제, 「감사시즌 업무 폭주 혹사…AI시대 희생양 된 회계사」, 2026.03.11
- 인베스트조선, 「”업무효율 높아질 줄 알았더니”…회계법인, AI에 속았다?」, 2026.03.17
- 다음(Daum), 「”아내가 회계사인데 너무 불안해요”…곳곳이 인건비 절감 생존경쟁」, 2025.11.26
- 서울경제, 「AI와 회계사의 미래」, 2025.09
- 한국공인회계사회 2026년도 회계심사·감리업무 운영계획
작성일: 2026년 4월 2일
본 문서는 공개 보도 자료 및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정리한 리포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