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왜 나는 더 바빠지는가
— 996 문화의 귀환, 제본스의 역설, 그리고 한병철의 피로사회로 읽는 현재
원문: 우석준 님의 Threads 포스트에 기반한 심층 분석
작성일: 2026년 4월
들어가며 — 해방의 도구가 족쇄가 되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것이 인간을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 믿었다. 단순 반복 업무는 기계가 맡고,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기묘하게도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AI 도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사람들, AI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 그리고 스스로를 얼리어답터라 자부하는 이들이 오히려 가장 긴 시간을 일하고 있다. AI를 쓰면 쓸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해야 할 일도 함께 늘어나는 이 역설적인 상황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원문 에세이는 이 현상을 세 개의 렌즈, 즉 996 노동문화의 부활, 제본스의 역설, 그리고 한병철의 성과사회론을 통해 해부한다.
1부 — 996의 귀환: 실리콘밸리는 왜 중국의 금지된 노동 관행을 자발적으로 채택하는가
996이란 무엇인가
996은 중국 테크 업계에서 탄생한 노동 관행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하여 밤 9시에 퇴근하고, 이를 주 6일간 반복하는 방식으로, 주당 총 72시간을 일하는 극단적 장시간 노동 체제를 의미한다. 이 문화는 알리바바, 바이두, 징둥닷컴 등 중국 1세대 빅테크 기업들이 급성장하던 시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공개석상에서 “996은 복이다”라고 발언했을 때 중국 개발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이 발언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2021년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996 관행을 공식적으로 불법으로 선언했다. 노동자 착취와 사회 불평등 심화에 대한 우려가 법적 조치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금지된 관행이 태평양을 건너다
그런데 중국이 법으로 금지한 그 관행이,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자발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Wired, Washington Post, Fortune 등 주요 미국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 에어리어의 AI 스타트업들이 996 모델을 점점 더 공개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은 채용 공고에 아예 “주 약 70시간 근무에 열정이 있는 지원자를 환영한다”는 문구를 명시하기도 한다.
AI 영업 관리 플랫폼 스타트업 Rilla의 사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회사의 성장 책임자 Will Gao는 Wired와의 인터뷰에서 80명에 달하는 직원 거의 전원이 996 스케줄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노동 방식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전설적인 헌신에서 영감을 받은 Z세대 하위문화와 공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코딩 스타트업 Greptile의 CEO Daksh Gupta는 12시간 근무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그라인드코어 문화’의 포스터 차일드가 됐고, AI 브라우저 자동화 스타트업 Browser Use의 공동창업자 Magnus Müller는 샌프란시스코 마리나 지역의 해커하우스에서 팀원들과 함께 거주하며 새벽 1시에도 화이트보드 앞에 모여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고 밝혔다.
빅테크 수장들도 거드는 분위기
이러한 흐름에는 빅테크 최고 경영진들의 발언도 한몫하고 있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2025년 초 제미나이 팀 직원들에게 주 60시간이 생산성의 “스위트 스팟”이라고 권고하며 매일 출근할 것을 촉구했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현 X) 인수 직후 남은 직원들에게 “극도로 하드코어한” 문화에 동참하거나 회사를 떠나라고 통보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마크 저커버그 역시 생산성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강조해왔다. 유럽에서도 벤처캐피탈 20VC의 창업자 Harry Stebbings는 “지금 이기려면 주 7일 속도가 필요하다. 독일의 어떤 회사가 아니라 세계 최고와 경쟁하는 것”이라고 LinkedIn에 게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무엇이 이 흐름을 추동하는가
이 현상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동인이 자리한다. 첫 번째는 AI 경쟁의 심화다. 중국의 DeepSeek이 미국 최상위 AI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훨씬 낮은 비용으로 출시하며 실리콘밸리를 충격에 빠뜨린 이후,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두 번째는 ‘생존’의 논리다.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는 AI 스타트업들은 적은 예산으로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개인당 업무 강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세 번째는 대규모 감원 이후의 효율 압박이다. 살아남은 직원들에게 더 많은 업무가 집중되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벤처캐피탈 파트너 Deedy Das는 Washington Post에 996 문화를 미화하는 창업자들이 대체로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경험 있는 사람은 주 40~50시간을 일하면서 80시간을 일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카자스 의학 저널을 비롯한 다수의 연구는 장기적인 초과근무가 스트레스 증가, 생산성 저하, 번아웃을 유발한다고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2부 — 제본스의 역설: 효율이 오를수록 왜 더 많이 일하는가
19세기 탄광에서 발견된 역설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는 한 가지 기묘한 현상을 발견했다. 와트의 개선된 증기기관은 같은 양의 석탄으로 훨씬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상식적으로는 석탄 소비가 줄어들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증기기관의 효율이 높아지자 석탄을 쓰는 것이 더 경제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산업이 증기기관을 도입했으며, 전체 석탄 소비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이 오늘날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라 불리는 개념의 탄생이다. 효율이 향상될수록 자원의 총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이 역설은 경제학의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와 맞닿아 있다.
AI 시대의 제본스 역설
2025년 1월, 중국의 DeepSeek이 미국 최상위 AI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구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소셜미디어에 즉각 이런 글을 올렸다. “제본스의 역설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AI가 더 효율적이고 접근 가능해질수록 그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우리가 결코 충분히 갖지 못할 상품이 될 것입니다.” 나델라의 발언은 DeepSeek 사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재해석하려는 낙관론이었지만, 동시에 AI 시대 노동에 대한 깊은 진실을 담고 있다.
2023년 초부터 2025년까지 AI 추론 비용은 약 92%가량 하락했다. 그런데 이 비용 하락이 AI 수요를 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발적으로 확장시켰다. GitHub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병합된 풀 리퀘스트 수는 전년 대비 23% 증가했고, 앱 스토어의 신규 앱 출시 수도 24% 뛰어올랐다. Stack Overflow의 2025년 설문에서는 개발자의 84%가 AI 코딩 도구를 사용하거나 사용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들은 같은 코드를 더 빠르게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코드를 출하하고 있었다.
노동 현장의 제본스 역설
이 역설은 에너지와 기술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노동 시간에서도 정확히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 50% 이상이 AI 도입으로 평균 3.8%의 업무 시간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절감된 그 시간은 퇴근을 앞당기지 않았다. 그 시간은 더 많은 보고서, 더 잦은 업무 업데이트, 더 복잡한 요구사항을 처리하는 데 그대로 재흡수됐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논리의 문제다. 개인의 처리 능력이 향상되면, 이전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과제들이 갑자기 ‘가능한 일’로 편입된다. 기업 입장에서 AI로 효율이 오른 직원에게 기대하는 산출량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더 많은 분석, 더 많은 콘텐츠, 더 많은 의사결정, 더 많은 프로젝트가 한 사람의 책임 범위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프랑스의 경영 컨설턴트이자 연구자인 Duperrin은 이를 두고 “AI는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 새로운 필요, 새로운 기대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협업 툴을 예시로 들면, 슬랙과 줌은 커뮤니케이션을 단순화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소통 채널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즉각 응답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내고, 집중력을 파편화했다. AI도 그 연장선에 있다.
원문을 쓴 이도 이 현상을 몸소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AI를 쓰면 쓸수록 이전에는 포기했을 일까지 해결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업무마저 스스로 떠맡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제본스 역설이 노동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가능성의 확장이 곧 의무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3부 — 한병철의 피로사회: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착취한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재독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은 2010년 독일에서 출간한 저서 『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haft)』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논리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이 책은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어판도 2012년 출간되어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읽혔다.
한병철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과거의 사회, 즉 ‘규율사회(Disziplinargesellschaft)’는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성과 금지의 원리에 의해 작동했다. 권력자의 명령, 종교의 규율, 법과 형벌이 사람들의 행동을 외부에서 통제했다. 푸코가 분석한 감옥, 병원, 정신병원이 규율사회의 대표적 공간이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가 진화하면서 사회의 작동 원리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한병철은 오늘날의 사회를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라고 부른다. 이 사회의 핵심 원리는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이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과잉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아무도 “하라”고 명령하지 않지만, 개인 스스로가 더 많이, 더 잘, 더 빠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면화한다. 성과사회의 지배 공간은 감옥이나 공장이 아니라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스타트업 해커하우스다.
자발적 자기 착취의 메커니즘
성과사회에서 착취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한병철 이론의 가장 충격적이고도 핵심적인 통찰이다. 규율사회에서는 억압하는 자(자본가, 국가, 권력자)와 억압받는 자(노동자, 피지배자)가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다. 저항과 연대가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성과사회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인물 안에 공존한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로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착취한다.
이 ‘역설적 자유’의 구조는 매우 교묘하다. 외부의 강제가 아닌 내면의 자발성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저항의 대상이 불분명해진다. 상사가 야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지?”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몰아붙인다. AI를 쓰지 않는 것이 게으름의 증거처럼 느껴지고, AI를 쓰면서도 그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결국 이 자기 착취는 성과사회가 약속하는 “나는 할 수 있다(Yes, I can)”는 긍정성의 폭력이다. “더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은 “그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했을 때”의 불안과 죄책감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소진(Burnout)과 우울은 이 자기 착취가 임계점에 달했을 때 찾아오는 현대적 질병이다.
AI는 이 엔진을 무한히 강화한다
한병철이 『피로사회』를 쓴 2010년에는 AI가 지금처럼 일상에 침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AI 시대에 더욱 강력하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AI야말로 “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ChatGPT, Claude, Copilot과 같은 도구들이 개인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압박이 찾아온다. 전에는 일주일 걸리던 보고서를 하루에 끝낼 수 있게 되면, 남은 나흘은 어디로 가는가? 새로운 프로젝트가 채워들어온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도 AI로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 또 다시 새로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끝이 없는 레이스다.
더 나아가, AI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가시화되면서,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뒤처지게 두는 도덕적 해이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마저 만들어진다. 이것은 외부의 강요가 아니다. 한병철이 말한 성과사회의 내면화된 강박이 AI 도구를 만나 더욱 첨예해진 형태다.
4부 — 역사의 반복: 1차 산업혁명이 남긴 교훈
해방의 약속, 착취의 현실
원문 에세이는 1차 산업혁명의 역설을 강력한 역사적 비유로 끌어온다. 방적기와 증기기관이 등장했을 때, 이 기술들은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비싼 기계를 멈출 수 없다는 이유로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하루 14~16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아동 노동이 만연했고, 기술 혁신이 만들어낸 생산성 향상의 과실은 자본가들에게만 집중됐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투쟁과 노동운동, 법적 규제가 필요했다.
이 패턴은 역사 속에서 반복된다. 기술 혁신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오지만, 그 이익이 노동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이익은 자본으로 먼저 흘러들고, 노동 조건의 개선은 사회적 압력과 제도적 개입이 있어야만 뒤따라온다. 그 과정에서 기술 혁신의 수혜를 받지 못한 계층은 오히려 더 열악한 조건에 놓이기도 한다.
AI 시대, 과거가 미래를 비추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면 인간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낙관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역사적 패턴을 보면 이 낙관론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있다. 기술이 만들어낸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는 질문이다. 제도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AI 혁명이 진행된다면, 그 이익은 AI 기술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소수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재의 AI 경제에서 우리는 이미 그 징조를 목격하고 있다. AI 도입으로 일부 직종에서 대규모 감원이 이루어지는 반면,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한 소수는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 이중 구조는 노동 시장의 K자형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상위 그룹과 AI에 의해 대체되거나 주변화되는 하위 그룹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병철의 성과사회 이론이 이 문맥에서 다시 한 번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이 양극화된 구조 속에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더 깊은 자기 착취로 진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 무서운 구조다.
5부 — 종합 진단: AI 효율성의 3중 역설
위 세 가지 관점을 종합하면, AI 시대의 노동 강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현상은 서로 맞물린 세 가지 역설에 의해 구조적으로 추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제본스의 역설 — 효율성의 역설이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해야 할 일의 총량이 비례하여 늘어난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과제들이 ‘가능한 일’로 편입되고, 줄어든 작업 시간은 더 많은 새로운 과제로 채워진다.
두 번째는 한병철의 역설 — 자유의 역설이다. AI가 부여하는 확장된 가능성은 그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했을 때의 자기 비판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강제 없이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내면화된 성과 논리가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만나 가속화된다.
세 번째는 역사적 역설 — 혁신의 역설이다. 기술 혁신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그 이익이 노동자에게 환원되기까지는 구조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혁신의 속도가 빠를수록, 노동자들은 혁신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의 압박만을 마주하게 된다.
나가며 — 해방은 기술에서 오지 않는다
원문 에세이는 의미심장한 단서를 달며 끝맺는다. “AI로 인해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 쓰는 글이 아님.” 이 한 문장이 글 전체의 핵심을 압축한다. 기술적 가능성의 확장 자체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냉정한 인식이다.
AI는 분명히 인간에게 놀라운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효율성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문제는 이 도구가 만들어낸 잉여 시간과 능력이 인간의 휴식, 창의성, 관계, 삶의 질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노동과 더 높은 성과 압박으로 재흡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본스의 역설은 기술이 아무리 효율적으로 진보해도 총 소비량은 오히려 늘어난다고 가르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론은 그 소비의 주체가 외부의 자본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는 현대인 자신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역사는 기술 혁신의 이익이 자동으로 노동자에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AI가 우리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다”라는 약속이 실현되려면,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이 작동하는 사회적·제도적 조건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고, 경제의 문제이며, 인간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가치의 문제다.
실리콘밸리의 해커하우스에서 새벽 1시에 화이트보드 앞에 선 젊은 창업자들의 열정은 진짜다. 그러나 그 열정이 끊임없이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구조 안에서 자발적 자기 착취로 귀결될 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한병철이 말한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질문은 “AI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참고 및 관련 자료
- Han, Byung-Chul (한병철). Müdigkeitsgesellschaft (피로사회). Matthes & Seitz Berlin, 2010. (국내 번역: 문학과지성사, 2012)
- Jevons, W.S. The Coal Question: An Inquiry Concerning the Progress of the Nation, and the Exhaustion of our Coal Mines. 1865.
- Fortune (2025.08.01). “Bay Area AI startups are increasingly leaning into models resembling China’s 996 working culture.”
- Washington Post (2025.10.20). “AI start-ups ‘obsessed’ with progress push hardcore work schedules.”
- NPR Planet Money (2025.02.04). “Why the AI world is suddenly obsessed with Jevons paradox.”
- 한국은행. 국내 근로자 AI 도입 업무 효율화 조사.
- Luccioni et al. “From Efficiency Gains to Rebound Effects: The Problem of Jevons’ Paradox in AI’s Polarized Environmental Debate.” arXiv, 2025.
- 원문 에세이: 우석준. Threads (@junseokwoo). “AI 시대에 왜 나는 더 바빠지는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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