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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일의 미래를 말하다

AI 시대, 일의 미래를 말하다

출처 영상 1 | SK텔레콤 × 송길영·황성현·김예지·조아란 (한석준·조아란 MC)
“월급은 AI가 벌어올게, 넌 놀기만 해” — AI와 일 [AI 이후 우리는] EP.1

출처 영상 2 | 희야기(HeeChan) × 실리콘밸리 Meta 8년차 개발자 Alex
“개발자 10명이 300명을 대체하고 있어요” — AI 시대의 현실 (2026.05.01)


들어가며 — 당연했던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장님, 저희 이제 뭐 먹고 살아요?”

이 질문은 농담처럼 던져졌지만, 지금 수많은 직장인의 속마음을 가장 정직하게 담고 있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나서 인류가 수십 년간 쌓아 온 직업의 의미, 조직의 구조, 일하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남는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미 구식이다. 더 깊고 불편한 질문이 우리 앞에 서 있다. 인간에게 ‘일’이란 애초에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현장이 각자의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하나는 서울, 출판과 HR과 청소와 강연이라는 매우 다양한 현장을 살아온 한국의 전문가들이 나누는 깊은 대화다. 다른 하나는 텍사스, 실리콘밸리 Meta에서 8년을 보낸 개발자가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펼쳐 보이며 전하는 생생한 증언이다. 두 현장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결국 같은 진실을 향해 수렴한다.


1 — 일의 의미가 흔들리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는 스티븐슨이라는 집사가 등장한다. 그는 평생을 ‘완벽한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헌신한다. 아버지의 임종 날에도 저택에서 열리는 행사를 완벽하게 치러낸 것을 자신의 일생일대 자부심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그러나 황혼기에 이른 그는 조용히 묻는다. 내가 평생을 헌신했던 이 직업적 가치가, 과연 그럴 만한 것이었는가.

출판 마케터 조아란이 이 소설을 대화의 화두로 꺼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불안의 구조가 스티븐슨의 황혼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쌓아 온 전문성이, 어느 날 AI 하나로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공포.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뒤바뀌는 경험. 그것이 지금 전 세계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감각이다.

Meta 8년차 개발자 알렉스는 이 감각을 숫자로 표현한다. “지난 4개월 동안 일어난 변화가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8년의 변화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다. Claude Code Opus가 출시되고 나서, 회사 안의 일하는 방식이 “아예 변해버렸고,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인식이 실리콘밸리 전반에 깔려 있다. HR 전문가 황성현 교수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수평적 조직은 이론이고 사람이 어떻게 수평적으로 일하냐”며 회의적이었는데, 그 발언을 지금은 몹시 후회한다고. AI가 조직 구조를 납작하게 만드는 일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2 — 35명이 3명이 되는 세상

이것이 얼마나 실제적인 변화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황성현 교수가 자문하는 한 회사는 불과 6개월 전까지 35명이 담당하던 업무를 지금은 단 3명이 처리하고 있다. 나머지 일은 세 개의 AI 에이전트가 담당한다. 대표가 각 에이전트의 자율도를 직접 설정한다. “너는 내가 시킨 대로만 해. 너는 자유도 50%. 너는 마음대로 해.” 남은 세 명의 인간 직원은 각자 영역의 결과를 검토하는 역할만 한다. 대표조차 “이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알렉스가 실리콘밸리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일부 리더십에서 “탤런트 있는 개발자 10명을 데리고 300명짜리 부서를 대체해 보려는 시도”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10명이 더 잘한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개발자 100명의 한 달 아웃풋에 명확한 상한선이 있었다. 사람이 코딩하는 이상 물리적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AI 도구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1인이 10인분, 100인분을 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 격차가 너무 크고 너무 빠르다.

출판계에서도 비슷한 충격이 있었다. 어느 출판사가 AI를 활용해 연간 9,000종의 책을 발간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기존에 연간 200종도 많다고 여겨지던 업계에서, 이 숫자는 공상과학처럼 들렸다. 지금은 품질 문제로 해프닝처럼 소비됐지만, 조아란은 가볍게 웃어넘기지 않는다. “뭐가 없어질지는 너무 보이는데, 뭐가 생길지는 상상이 잘 안 된다.” 그것이 공포의 본질이다.

실제로 국내 IT 업계에서는 중소기업 IT 분야 채용 공고가 2022년 대비 2025년에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등 취업자 수도 전년 동월 대비 4만 2,000명 감소했다. 숫자가 이미 변화를 말하고 있다.


3 — 블루칼라도, 개발자도, 변호사도

오랫동안 AI 시대의 통설은 이랬다.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는 대체되고, 손을 쓰는 블루칼라는 살아남는다. 그런데 12년째 청소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온 김예지는 이 통설에 균열을 낸다. 최근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 ‘헬릭스’가 청소 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AI만큼은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던 청소 일도 진짜 대체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대체되기 어렵다는 통념에도 그녀는 회의적이다. “AI에게 물어보면 저보다 훨씬 창의적인 대답을 많이 해줘서, 그것도 의문이 든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개발자 직군은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다들 코딩 배워야 한다”, “개발자가 최고다”라는 말이 세상을 덮었다. 그런데 갑자기 개발자도 AI에 의해 대체된다고 한다. 알렉스는 이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개발자는 이제 개발을 배우면 안 됩니다.” 개발 자체보다 ‘프로덕트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회계사, 변호사처럼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던 직업들이 지금 가장 먼저 대체된다고 한다.

황성현은 이 현상의 구조적 원인을 짚는다.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필요했던 세 가지 능력이 있다. 논리력, 분석력, 창의력이다. 그런데 이 중 논리력과 분석력, 앞단의 두 가지를 AI가 인간보다 훨씬 잘하는 시대가 됐다. 이것이 가장 큰 충격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학벌이었고, 그래서 기업들은 좋은 대학, 높은 학점, 높은 토익 점수를 가진 사람을 뽑아왔다. 그런데 AI가 논리와 분석을 더 잘하는 세상이 됐는데도, 많은 기업이 아직 예전 기준으로 사람을 채용하고 있다. 그것이 조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4 — 200년 만의 귀환 — 회사원에서 장인으로

송길영은 이 변화를 역사의 긴 흐름 속에 놓는다.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일은 언제나 존재했다. 처음엔 손으로 했고, 호미가 나왔고, 소가 등장했고, 트랙터가 왔다. 도구는 언제나 바뀌었고, 인간은 언제나 적응했다. 지금의 AI 충격도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독특함은 너무 많은 도구가 동시에 나왔다는 것이다. 평생 소를 다루며 일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트랙터가 주어진 충격처럼, 변화의 광범위함과 속도가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밭을 잘 가는 것.

그가 더 흥미롭게 짚는 것은 일의 구조적 변화다. 과거에는 빵집 주인이 반죽도 하고, 원가도 계산하고, 유통도 고민하고, 손님 수도 파악했다. 모든 것이 한 사람 안에 통합돼 있었다. 그러다 사업이 커지면서 역할이 분화되고 거대한 조직이 생겨났다. 원가만 담당하는 사람, 유통만 담당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데 이제 AI가 그 분산된 역할들을 다시 한 사람에게 수렴시키기 시작했다. 전체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한 200년 만에 장인에서 회사원으로 갔다가 장인으로 다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이 이 변화의 방향을 가장 잘 요약한다.

알렉스의 경험도 이와 정확히 겹친다. 그는 1인 사업을 하면서 개발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프로덕트 평가도 하고, 로드맵도 짜고, 유튜브도 한다. AI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각 영역을 조금씩 알고 있을 때 볼 수 있는 시각과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다양성이 훨씬 풍부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제너럴리스트가 각광받는 세상이 온다는 그의 전망은, 송길영의 ‘장인으로의 귀환’과 같은 현실을 다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5 — 부가 없는 부장님과 관리자의 종말

변화는 조직 안에서 가장 먼저, 가장 아프게 드러나고 있다. 정보의 흐름이 극도로 빨라지면서 조직이 납작해지고 있다. 황성현은 이것을 ‘그레이트 플래트닝(Great Flattening)’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임원에게 전달되던 정보가, 이제 AI 프롬프트 몇 줄만으로 최상단에서 곧바로 파악된다. 단계의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SK 그룹사 HR 컨퍼런스에서 들은 한 임원의 선언은 이 변화의 방향을 상징한다. “상무급 이상은 이제 리서치를 직접 하라.” 예전에는 팀원이 리서치를 해서 위로 올리고, 그것이 여러 단계를 거쳐 임원에게 전달됐다. 그 중간 단계가 이제 사라진다. 모두가 같은 도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팀장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였다. 목표 수립, 업무 진행 관리, 결과 확인. 그런데 황성현이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확인한 것은, 이 세 가지 모두에 이미 AI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코딩 피드백처럼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AI가 더 정확하고, 더 친절하게 피드백을 준다. 관리자의 고유한 역할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AI로 대체되고 있다.

그 결과, ‘부가 없는 부장’, ‘팀원이 없는 팀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부장’ 타이틀은 최소 50명 조직을 이끌어야 가능했지만, 이제 마케팅 부장의 팀원이 다섯 명도 안 된다. 극단적으로는 팀원이 아예 없는 팀장도 나왔다. 그 팀원이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들이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목격하는 실리콘밸리의 풍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이미 20개의 에이전트를 동시에 돌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 자는 동안에도,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도 에이전트들이 일한다. 스케줄 태스크로 매일 아침 특정 시간에 자동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할 수도 있다. 회사 일을 에이전트가 처리하고, 유튜브 채널도 에이전트가 운영하고, 서비스 개발도 에이전트가 진행하는 구조가 이미 현실이다.


6 — AI 에이전트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알렉스는 인터뷰 도중 직접 노트북을 펼쳐 에이전트의 실제 작동을 보여 준다. 그는 Claude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커리어해커 알렉스라는 사람을 찾아서 최근 포스트 열 개를 읽고 분석해 줘.” AI는 실제로 브라우저를 열고, 검색창을 찾고, 이름을 입력하고, 프로필을 찾아 게시물들을 스크롤하며 읽는다. 손 하나 대지 않았는데 컴퓨터가 작동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각 포스트의 좋아요와 댓글을 정리해서 어떤 포스트가 왜 잘됐는지 분석해서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만들어줘.” 이것도 된다. AI는 브라우저를 넘나들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직접 구글 드라이브에 스프레드시트를 생성해 정리한다.

그가 이 시연에서 전달하고자 한 핵심은 단 하나다. “내가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에이전트도 할 수 있다.” 웹사이트 방문, 정보 검색, 게시물 읽기, 파일 정리, 스프레드시트 작성, 이메일 확인.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없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핸드폰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위치에 상관없이, 고성능 장비 없이, 인터넷이 연결되는 기기만 있으면 된다. “어디서 일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LLM과 에이전트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기존 챗봇은 대화창 안에 갇혀 있다. 에이전트는 그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브라우저를 열고, 파일을 조작하고, 코드를 실행하고, 외부 서비스와 연동된다. 도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7 — 일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는 역설

AI가 들어오면서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당연한 예측처럼 보였지만, 조아란의 경험은 그 반대다. “일이 늘었어요.” 이전에는 “비용이 없다”, “기술이 없다”를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 말 한마디로 가능해졌다. 비개발자인 마케터가 Claude Code 같은 도구로 개발에 가까운 작업을 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무한히 넓어졌다. “일이 무한 증식”했다는 그녀의 표현은, AI 도입이 반드시 일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중요한 반례다.

이 역설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AI는 인간의 욕심을 증강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더 오래 살고 싶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은 욕망은 인간 본성이다. 그 욕망이 더 많은 도전을 낳고, AI는 그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거대한 협력 시스템이 처음 만들어진 이유도 결국 커진 욕심 때문이었다. AI는 그 확장의 최신 도구일 뿐이다.

다만 그 확장이 개인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 개인의 손에서 가능해지고 있다.


8 — 새로운 인재상 — 성실성을 넘어서

그렇다면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살아남는가. 황성현의 답은 명확하다. 성실성이 나쁜 가치는 아니지만, 과거에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던 반면 이제는 그것만으로 안 된다. 조직도 이미 이것을 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기준이 바뀌기 시작했다.

조아란이 설명하는 변화된 채용 기준은 이렇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어 가며 일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 주인 의식이라는 말이 구식처럼 들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이 다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사람을 원한다.

알렉스는 이것을 ‘빌더와 리뷰어’의 언어로 설명한다. 미래의 직군은 크게 두 가지로 재편된다. 빌더는 AI를 활용해 실제로 무언가를 빠르게 만드는 사람이다. 개발자뿐 아니라 디자이너, PM, 마케터 모두 포함된다. 리뷰어는 만드는 것보다 방향을 잡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리뷰어는 판단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판단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눈은 있지만 목소리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직군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발자라는 직군 자체가 지금은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빌더인지 리뷰어인지를 파악하고, 그 능력을 AI 도구를 활용해 극대화하는 것이다.


9 —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남는다”

송길영의 가장 역설적인 통찰이 있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남길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장 가치를 갖춘 사람, 언제든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조직에 남는다. 조직에 의존하고 조직의 은혜를 바라는 사람일수록 도태된다. 날아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한 스타트업 대표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함께하는 구성원들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구성원을 붙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황성현은 이 맥락에서 SK에 입사하던 1993년의 이야기를 꺼낸다. 당시 SK의 경영 시스템에는 “내가 기여할 때까지 충분히 열심히 기여하고, 적정한 시점에 떠나는 것이 기업관이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평생 고용 시대였던 당시에 직원들의 반발을 샀던 이 문구가, 지금 시대에는 “이만큼 맞는 말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100년을 사는 시대에, 한 조직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은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너무 많은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그의 결론은 ‘창직(創職)’이다. 취업을 넘어, 창업을 넘어, 나만의 일을 만들어 내는 것. 남의 일을 아무리 잘해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10 — 회사는 이용하는 것이다

조아란은 직장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직장을 포함 관계, 즉 내가 조직의 일부라는 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협력 관계로 볼 것. 그리고 조직의 리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개인의 역량을 키울 것. 유튜브 제작도, 새로운 기술 실험도, 회사 인프라 안에서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다. 회사 돈으로 작은 프로젝트를 굴려 보고, 그 경험이 나의 자산이 된다.

SKT의 사례는 기업이 개인을 돕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다. 코딩을 못해도 에이전트를 개발해 쓸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보안 코딩과 검증 자동화 시스템이 담당자의 업무 시간을 연간 3,000시간 절감했다. 현장 직원의 불편함을 더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게 됐다. 기술이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조직도 개인도 모두 이득이다.

알렉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보고, 강의를 준비해 보는 것. 그 경험이 쌓여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역량을 갖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회사를 ‘이용’하는 감각이 아직 낯선 사람들이 많지만, 이 시대에 그 감각이야말로 생존의 기술이다.


11 — 20대에게 남은 무기

엔트리 레벨 채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사회초년생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절망감이 퍼져 있다. 알렉스는 이 절망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20대에게는 10년차, 20년차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고유한 무기가 있다고. 그것은 무모함이다.

경력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없다.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는 다르다. 그의 구체적인 제안은 과격하리만큼 실용적이다. “휴학을 하고 6개월 동안 AI 서비스를 전부 구독해서 다 해봐라. Claude Code 월 200달러짜리 구독을 하고 토큰을 다 써버려라. 그 6개월이 대학교 6개월 학업보다 배우는 것이 많을 수 있다.” 실제로 오픈AI에 채용된 어떤 20살 청년은 ChatGPT에게 6개월 동안 질문에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스스로 아키텍처를 이해하고 역량을 쌓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조언이 있다. 1인 사업자나 크리에이터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당신 채널의 이 부분이 아쉬운데,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접근이 가능한 것은 20대뿐이다. 알렉스 본인도 그런 제안을 받으면 기꺼이 지갑을 열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관성을 깨는 무모함,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12 —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것

토크쇼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가?”

김예지의 답변은 짧고 명확했다. 두 가지다.

첫째, 주인 의식. AI는 자신이 하는 일에 주인 의식이 없다. 주어진 프롬프트를 수행할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을 진다. 그것이 아직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인간의 영역이다.

둘째, 프롬프트 밖을 볼 수 있는 능력. 청소 의뢰를 받았을 때, AI는 요청받은 범위만 처리한다. 김예지는 청소를 하다가 거미줄을 발견하면 요청하지 않아도 치운다. 주인이 눈치채지 못한 것까지 스스로 챙기는 능력. “요청된 것 외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알렉스도 같은 방향에서 이야기한다. AI 도구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것을 어떤 목적에 사용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 그 창의적 판단은 인간의 몫이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에이전트도 할 수 있다”는 말은 공포처럼 들리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무엇을 시킬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된다는 뜻이다. 거기서부터 창의력이 필요하다.


나가며 — 인간 화이팅

이 모든 이야기가 수렴하는 곳은 하나다. AI 시대에도 일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가 달라진다. 조직의 보호 아래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의 주인으로서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황성현의 말처럼 “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AI가 논리와 분석을 더 잘하는 시대가 됐다면, 인간에게 남은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 그리고 AI가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는 능력이다. 거미줄을 발견하고 먼저 치우는 그 능력.

AI는 무서운 속도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고, 관계를 맺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나가고자 하는 본능. 그것이 남아 있는 한, 일은 계속된다. 형태만 달라질 뿐이다.

김예지가 12년간 청소를 하면서, 그리고 10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는데, 너무 싫어하면 괴로우니까 좋아해 보기로 했다.” 그 단순한 정신 승리가, 실은 AI 시대를 버티는 가장 오래된 방법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말은 토크쇼의 마무리 멘트를 그대로 빌리고 싶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주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절대로 잃지 말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단,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십시다. 인간 화이팅.”


작성 일자: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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